“지금도 눈 감으면 그 날이 또렷이 떠올라”
“지금도 눈 감으면 그 날이 또렷이 떠올라”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2.04 1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완순 조천읍 북촌리노인회장
학살이 벌어졌던 현장을 가르키는 고완순 노인회장.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세월이 많이 흘렀다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69년 전 그날 학살 현장이 또렷이 떠올라요. 아직도 마을의 학살이 이뤄졌던 곳을 지나기가 무섭습니다.”

고완순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노인회장(79·여)은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 운동장 등에서 이뤄졌던 집단학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고 회장은 “어머니, 언니, 남동생 등과 학교 운동장에 끌려가보니 담벼락에 기관총이 설치되고, 이름이 불려 앞으로 나간 7, 8명이 총살당한 것을 시작으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며 “총소리에 땅을 기어 다니며 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군인들에 의해 너븐숭이에 있는 옴팡밭으로 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바람에 날린 듯 여기저기 흩어져 죽은 채 쓰러져 있었다”며 “흙이 피에 젖어 빛을 내는 것을 보면서 죽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들린 사격중지 소리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회고했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북촌리에 살고 있던 외가댁은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 외삼촌 2명, 이모 등이 학살당해 풍비박산이 됐다.

고 회장은 결국 고향인 북촌마을이 미워서, 제주가 싫어서 18살에 고향을 떠나 강원도 등지에서 30여 년간 생활하다가 1986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직도 북촌초등학교와 너븐숭이, 당팟 등 4·3 당시 학살이 벌어졌던 곳에는 가지 않는 편”이라며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한순간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고 하니 너무 무섭고, 기억하기에는 너무 상처가 많다”고 흐느꼈다.

고 회장은 최근까지 4·3의 화해와 상생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마을 내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있는데 과연 그 모든 것을 덮고 화해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고 회장은 “한동안 가해자들을 용서하기 힘들었지만 그들도 당시에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살려고 하니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이해가 되더라”며 “우리 대에서 원수의 대물림을 막고 악연을 끊어야 된다는 생각에 이제는 화해와 상생에 깊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