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풍선개 속 부정적 가치의 역설
매끄러운 풍선개 속 부정적 가치의 역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2.0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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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아름다움의 구원
제프 쿤스의 조형물 풍선개

[제주일보]  “매끄러움은 현재의 징표다. 매끄러움은 제프 쿤스(Jeff Koons)의 조형물들과 아이폰과 브라질리언 왁싱을 연결해준다…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Like를 추구한다. 매끄러운 대상은 자신의 반대자를 제거한다.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이 책의 첫머리에는 제프 쿤스의 조형물 풍선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거대한 풍선개는 매끄러운 동시에 위태로워 보인다. 바람이 가득 찬 풍선을 만졌을 때 느끼는 것과 유사하다. 누군가 풍선개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풍선개는 상처를 입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자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렇듯 풍선개는 어떤 상처 앞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이 거대한 풍선개는 거울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비춘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봉합선조차 없는 이 조형물의 내부을 들여다 볼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어떤 해석도 생각할 필요도 없어질 것만 같다. 오직 얻을 수 있는 것은 매끄러운 표면뿐이다.

이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과 사물을 다루는 것 역시 거대한 풍선개를 마주하는 일과 유사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상처를 받는 것보다는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하고 깊은 관계보다는 회피하는 것을 무의식중이지만 선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우리는 늘 이 거대한 풍선개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제프 쿤스의 풍선개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예술은 더 나아가 오늘날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이 아름다움은 다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반영되고 있다. 일례로 우리가 어떤 제품을 구매하고 사용할 때 작은 흠집이나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전제하며 구매하고 사용한다. 만약 흠집과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즉시 폐기되거나 수리될 것이다.

우리가 자주 찍는 셀카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이해된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 남기고 나머지 모습은 아주 간단하게 삭제한다. 몸에 난 털을 왁싱하는 것처럼 말이다. SNS 공간 역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동시에 자신이 보고싶은 타인의 모습만 남겨둔다. 그러고 나서 ‘좋아요’ 개수에 집착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의 매끄러움은 예술과 상품과 인간이 함께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렸다. 이 가치는 부정적인 것들을 끌어안는 방향이 아닌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렇다면 마주하면 불편하고 혼란, 고통을 주는 것들은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은 우리가 외면하려 애쓰고 있는 그런 부정적 가치에 대해 역설한다. 때로는 고통, 절망, 불편함 같은 가치들을 껴안을 때 나와는 다른 것을 인정할 때 스스로 설정한 경계를 넘어설 수 있고 더 나아갈 수 있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외면하려 했거나 모르고 있던 것을 경험하는 일 혹은 우리는 자주 상처를 받지만 그것을 통해 성숙했다고 여기는 것 또는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정적 가치 혹은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부정적 가치나 감정들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는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기룡 동녘도서관 사서>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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