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래'에 대한 의무
'우리 미래'에 대한 의무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8.01.3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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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남철기자] 2013년 발간된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웬디 무어가 쓴 논픽션 ‘완벽한 아내 만들기’가 최근 국내에 소개됐다. 이 책은 영국의 시인이자 반노예제 운동가, 아동도서 작가였던 토머스 데이(1748∼1789)가 자신이 결혼하고 싶은 여성을 찾는 대신 완벽한 아내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데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데이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에 대한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재혼하는 것을 보고 계부에게 넘어간 것이라고 여겼다. 그에게 여성은 순진한 처녀와 난폭한 남성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로 나뉘었다. 데이는 여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면서도, 여성 혐오를 동시에 드러냈다.

데이는 여성이 그리스 신화 속 여신처럼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시골 아가씨처럼 순수하고 꾸밈이 없어야 하며, 자신에게 복종해야 했다. 데이의 이런 여성관은 수차례 좌절로 이어졌다. 그는 결국 자신이 직접 소녀를 키워 자신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여성으로 성장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고아원에 있던 12살 사브리나와 11살 루크레티아라는 소녀를 데려왔다. 데이는 소녀들에게 사치와 방탕에 대한 인내를 시험한다며 예쁜 옷이 들어 있는 상자를 준 뒤 갑자기 불에 집어던지고 불타는 것을 보게 했다. 충성심과 복종을 시험하기 위해 가짜 비밀을 알려준 뒤 발설하지 말라는 식의 교육을 했다. 하지만 그의 엽기적인 실험은 실패로 끝난다.

데이는 1773년 ‘죽어가는 검둥이’(The Dying Negro)라는 시를 발표해 반노예제 운동에 앞장선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자신이 두 소녀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소녀 두 명을 ‘교육’했던 경험을 반영해 쓴 ‘샌퍼드와 머튼’이란 어린이용 책은 한 세기 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현재도 팔리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녀 양육을 거부하면서 학대하거나 살해 후 암매장하는 인면수심의 범죄가 겹쳐졌다.

발달장애와 갑상선 기능 저하 증세가 있는 자신의 5살된 어린이를 학대하다가 사망 후 야산에 암매장한 30대의 남성. 자신의 자녀 3명이 자고 있는 방에 불을 질러 3남매를 숨지게 한 20대 여성. 아파트 복도에 신생아를 버린 20대 대학생.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아동 학대를 보여주는 최근의 사례이다. 제주지역 역시 이런 비극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찰에 접수된 도내 아동학대 사건은 2015년 183건, 2016년 288건, 지난해 317건(10월 말 현재)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아동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아동에 대한 학대가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부모들이 ‘내 아니는 내 것’이라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자녀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학대를 받고 자란 아동들이 향후 잠재적인 학대의 가해자가 된다는 점에 이견은 없을 정도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80%가 가정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렇게 아동학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기관에서는 ‘학대’의 범주를 폭행 등의 적극적 행위 이외에도 유기나 방임 등 소극적 행위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인식하지 못 하는 순간에도 학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라는 말과 같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은 그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야 할 우리 사회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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