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힘, 척박한 대지에 핀 연꽃 한 송이
예술의 힘, 척박한 대지에 핀 연꽃 한 송이
  • 제주일보
  • 승인 2018.01.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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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 / 문화기획가

[제주일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 유행어 중 대표적인 것은 ‘리스트’라는 단어이다.

‘화이트 리스트’니 ‘블랙 리스트’니 하는 단어들은 한류바람을 일으키며 문화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우리 문화 현실의 미숙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우리를 부끄럽고 참담하게 만들었다.

그 이면에는 ‘예술의 힘’을 얕잡아보고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쯤으로 간주하는 오만함이 놓여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예술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수준과 위상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예술은 육체적 삶의 현실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현실까지도 드러내 준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짜 현실을 그려냄으로써 오히려 진짜 현실을 부각시키고, 사막과 같은 진짜 현실의 오아시스가 되어 팍팍한 우리 삶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미덕을 갖추고 있으며, 우리는 그 손을 잡음으로써 현실로부터의 ‘행복한 일탈’을 체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삭막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에너지로 충만하게 된다.

한 마디로 예술은 지리멸렬한 삶에 뿌리를 내리고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여주는 ‘연꽃’과 같은 존재이다.

영화를 통해 살펴보자.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영화들을 보면 유독 실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들이 영화적 성공을 거둔 경우도 많다.

설사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실제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영화들만 보아도 ‘도가니’, ‘국제시장’을 비롯하여 ‘택시 운전사’, ‘1987’ 등이 있다. 이런 영화들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그러한 사건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욕구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검고 큰 손’에 의해 왜곡되고 통제되어 대중들의 ‘앎’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예술은 대중들의 아픔을 쓰다듬고 위로하며 구원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들이 신문기사나 뉴스를 통해 체험되었을 때와는 달리, 예술을 통해 체험했을 때 엄청난 폭발력과 파급력을 보여주게 된다는 점이다.

대하 소설인 ‘태백산맥’은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만들어져 당시 민중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면서 민중들을 위로해줬고,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모순과 문제점을 개선해나가야겠다는 ‘의식 변혁’ 과정을 갖게 되었다.

제주도의 경우에도 ‘4·3 사건’이라는 트라우마를 예술적으로 극복해나가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의 정신에 깃들어 있는 아픔을 치유하고 개선하기 위해서 예술 활동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화이트 리스트’니 ‘블랙 리스트’니 하는 것은 예술을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이런 움직임은 있었지만 예술인들은 예술인만의 양심과 냉철한 이성, 그리고 풍성한 감성을 바탕으로 시대를 앞서가며, 척박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들을 피워내어 왔다.

예술을 예술로 대하고, 예술을 예술답게 대할 줄 아는 성숙한 문화가 정착되길 고대한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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