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대몽항쟁 거점…'호국혼' 깃든 항파두리
삼별초 대몽항쟁 거점…'호국혼' 깃든 항파두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1.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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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16코스(고내~광령올레)-장수물~광령1리사무소(5.3㎞)
장수물.

[제주일보] # 장수물에서

먹는 물이 귀하던 시절, 중산간도로 변에 위치한 장수물은 길가는 나그네의 생명수였다. 항파두리성 서쪽 소왕천에 면해 있는 암반수다. 어떻게 바위에 조그만 샘이 파여 생수가 나오는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어, 당시 사람들은 ‘김통정 장군이 궁지에 몰린 나머지 급히 성에서 뛰어내리다 파인 발자국에서 물이 솟아나온다’는 전설을 만들었다.

물론 항파두리성 주변엔 이것 말고도 용천수가 더 있다. 옹성물·구시물·소왕천 등이 그것이다. 군부대가 주둔한 곳이어서 많은 물이 필요했을 터. 지금 장수물은 제대로 관리 되지 않아 ‘음용수로 적합지 않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11월 항파두리에서 이곳 장수물을 거쳐 옹성물과 구시물을 돌아오는 역사탐방길 1코스 2.9㎞와 항파두리에서 장수물과 옹성물을 거쳐 멀리 소왕물을 돌아오는 2코스 6㎞를 열었는데, 곧 개장할 예정이다.

 

항파두리 토성.

# 항파두리 토성

올레길은 장수물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아늑한 소나무 숲길을 거쳐 남쪽으로 난 농로와 연결되고, 농로를 따라가면 양쪽에 말끔하게 복원된 항파두리성과 마주한다. 올레길은 왼쪽 성안으로 나 있고, 200m쯤 걸어간 곳에 나무로 성 위에 올라가 볼 수 있도록 시설해 놓았다. 적이 쳐들어 왔을 때 말꼬리에 빗자루를 매달고 재를 뿌린 성 위를 달려 성안을 넘볼 수 없도록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토성 동쪽에 고성천, 서쪽에 소왕천이 있고, 지형은 남고북저를 이루는데, 쫓기는 중에도 어떻게 이런 천연요새의 적지(適地)를 찾아 성을 쌓았는지 놀라울 뿐이다. 토질도 자갈이 섞인 황갈색 토양이라 토성을 쌓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남쪽으로 나무 계단을 오르니, 한창 고고학적 조사가 행해지고 있는 내성지다.

 

항파두리 순의문.

# 항몽순의비와 전시관

사적 제396호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은 진도 용장성이 함락된 1271년(원종 12) 5월, 김통정이 남은 삼별초 군대를 거느리고 들어와 이문경 부대와 합세해 쌓은 본격적인 방어 시설이다. 1273년 4월 고려의 김방경과 원장인 흔도가 이끄는 여몽연합군에 의해 토벌되기까지 만 2년 동안 대몽항쟁의 거점 역할을 했다.

그래 1977년에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총화단결을 다짐하는 뜻’에서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내성이 위치했던 9000여 평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우고 성역화와 발굴 사업을 벌였다.

순의문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전시관을 둘러본다. 정창섭 화백이 그렸다는 기록화 7점은 언제 보아도 감동이다. 빨리 성을 쌓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중, 한 쪽에서 매를 맞는 주민의 모습이 애처롭다.

쉬기도 할 겸 차분히 앉아 동영상을 지켜본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 ‘삼별초의 또 다른 전쟁’, ‘몽골의 제주지배 100년’, ‘과제와 교훈’까지 차분하게 정리한 수준 높은 자료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넣은 ‘삼별초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진도 용장산성에서 출토된 연꽃무늬 막새기와와 오키나와 우라소에의 것을 비교하면서 1429년부터 왕국이 건국되고 해상문화를 꽃 피웠다는 류쿠왕국에 ‘고려의 삼별초가 건국에 도움을 주었을까?’ 하는 ‘우리가 풀어야 할 퍼즐 한 조각’이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다.

 

항파두리 전시실의 토성 쌓는 그림.

# 외성을 거쳐 숭조당길을 지나

울타리에 걸린 애월문학회에서 모집해 걸어놓은 아이들의 작품을 일별하고, 돌하르방이 서 있는 항파두리 휴게소를 지나 다시 토성 옆으로 간다. 다른 곳에서는 나무로 막혀 길게 보이는 곳이 드물지만 이곳에서는 확 트여 토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제주에서는 흔한 게 돌이라 성 하면 보통 석성을 떠올리지만, 본토에는 돌이 귀하기 때문에 토성도 꽤 많다.

이 지역은 표고 약 200m의 중산간 지대인데, 비고 21m의 안오름이 있어 오름 북사면에서 동남쪽으로 성을 둘렀기에 성벽 밖 동쪽으로 고성천, 서쪽은 봉천계곡으로 이어진다. 봉천계곡으로 끊어진 부분에서 고성숲길로 들어가, 보리밭 구석을 돌아나가며 성을 보면 온통 파랗게 밭과 어우러진 것이 색다른 볼거리다.

과수원 건너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예쁜 집을 보며 소나무 숲을 지나 고성천 옆으로 난 길로 들어선다. 거기서 북쪽으로 조금 가다 내를 건너면 얼마 안 가 ‘숭조당’이다.

숭조당(崇祖堂)은 ‘조상을 모신 곳’으로 ‘납골당’을 이르는 말일 터. 안내문이 없어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문씨 집안 비석이 많은 걸로 보면 여러 곳에 묻혀 있던 일족의 유골을 모아 안치한 것으로 보인다.

 

# 향림사 주변

그곳에서 조금 더 걸으면 고성8길이다. 곳곳에 별장이 나타나고,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도 간간이 보인다. 한 감귤밭은 제법 열매가 달렸는데도 나무에 있는 채로 썩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별장길 입구를 지나면서부터는 특이하게 멋 내어 지은 집들이 곳곳에 보인다. 옛날에는 민가와 떨어진 곳에 무덤들이 있었는데, 이제 이런저런 곳에 건축 허가를 마구 내주다 보니, 무덤과 사람이 사는 집이 한데 얼려 있다. 빌라까지 들어서 ‘청화마을’을 이뤘다. 그런 풍경이 다시 고개를 넘을 때까지 이어진다.

다시 고개를 넘으니,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물허벅 여인상이 보인다. 현무암으로 만든 조각 작품을 자주 대해왔지만 거의가 투박하더니 이 정도면 수작이다. 얼굴선이 조금 날카로워 보이지만 이곳 절물 샘을 지키는 돌하르방에 비해 손색이 없다. 옆에 있는 향림사는 1988년 지산 스님에 의해 옛 절터에 창건된 태고종 사찰이다. 절에서 예쁜 골목길을 걸어 나오면 광령초등학교가 나타나고, 곧 종점인 광령1리사무소에 이른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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