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철부지 사회'
어쩌다…'철부지 사회'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01.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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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어쩌다 어른’이라는 TV 특강 쇼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어쩌다 어른? 이렇게 되물어 보았을 것이다.

말이 제대로 종지(終止)되지 않고 의미 진행의 완결성도 떨어지는 이 단편의 문장은 사실 ‘해석(解釋)’이 열려있다.

사전적 의미로 ‘다 자란 사람’ 또는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을 ‘어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어도 제대로 어른 노릇을 하고, 어른으로 대접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그야말로 ‘어쩌다보니…어른이 되어있는 사람’이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속은 아직도 ‘아이’인데, 나이만 먹어서 어쩌다가 나이든 어른 대접을 받게 되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른 아닌 어른에 대한 핀잔의 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어쩌다가 준비나 자각없이 어른이 되고 또 늙어가는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심문(審問)같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의미로 ‘철들다’라고 한다. ‘사리를 분별해 판단하는 힘이 생김’을 뜻하는 말로 어른·성숙·성장과 동의어다.

그런데 이 말이 어쩌다가 그 의미가 180도 바뀌었다. 철들지 않는 것이 ‘미숙한 것’이 아니라 ‘쿨’하고 ‘멋진’ 것이 됐다.

연예인은 물론이고 정치가와 성공한 기업가도 “철들지 않으려 노력한다”거나 “내 성공의 비결은 철들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예전에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을 일컬어 ‘철부지’라고 했으나, 언제부턴가 ‘철들지 않는 것’이 ‘젊게 산다, 나이에 비해 열정적으로 산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래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것일까. ‘철들지 않음’은 즉 젊음, 특히 정신적 젊음을 유지하고, 열정과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뜻이 된 것이다.

‘제발 철 좀 들어라’ 할 게 아니라 ‘철 들지 말아라’ 하게 됐으니.

▲일본의 인간 환경학자인 가타다 다마미(片田珠美)는 이런 우리 사회를 ‘철부지 사회’라고 한다.

참을성과 저항력 부족, 책임 전가와 의존증 등 사회적 병리현상이 만연한 ‘성숙 거부’의 철부지 사회라는 것이다.

어른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유아(幼兒)적 만능(萬能)감’을 버리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확보하는 것이다.

어른스러움이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객관적으로 구분한다는 것,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눈을 맞추는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대평가하던 자신의 이미지를 상실해가는 ‘포기의 과정’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는 욕망으로 나이가 들어도 관조적 시선은 물론, 제대로 ‘포기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어른도 성숙한 어른의 모델을 보여주지 못하니 철부지들의 악순환은 계속된다고 했다.

▲젊은 열정을 유지하겠다는 ‘철들지 않는 것’을 곧바로 ‘철부지 사회’로 연결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보면 우리 사회의 트렌드가 된 ‘철 들지 않음’이란 것은 결국 젊음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반영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사회적으로 ‘나이에 걸맞게 혹은 나이에 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누구도 제대로 나이 드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의 책임같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평창 동계올림픽 등을 둘러싼 남북(南北) 문제나 정치·경제·사회 문제가 터져나올 때마다 이 나라나 지역사회가 ‘철이 덜 든 것만 같고’ 그 어디서도 성숙한 어른을 보기 어려워 안타까운 것 또한 사실이다.

정치도, 경제도 모두 ‘철부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말그대로 ‘철들지 않는’ 영원한 청년의 시대가 계속됐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한편으론 제대로 ‘철든 사회’, 철든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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