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화
산다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1.23 1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희. 시인

[제주일보] 연일 이어지는 강추위에도 아파트 화단에 붉게 핀 산다화가 눈길을 끈다. 눈보라 치고 비에 젖어도 고상한 귀부인의 자태에 눈을 떼지 못해 볼 일이 있어 나가던 발걸음 멈추고 계속 좇게 된다.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지고도 황홀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산다화에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시가 생각났다.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 시인의 소망대로 새해에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 함민복 ‘그림자’ -

심심풀이지만 새해가 되면 그 해의 신년 운세가 궁금해진다. 호기심에 무료 운세 사이트에서 오늘의 운세를 봤다.

동쪽에서 귀인이 온단다. 나도 모르게 어느 곳이 동쪽인지 가늠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 망설이며 받았는데, 삼십년 전에 헤어진 친구다.

결혼 후 남편 직장 근무지 따라 살다 보니 지금에야 친구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다 조만간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겨울만 되면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다니던 불림밭, 단발머리에 큰 눈망울의 하이얀 칼라가 유독 눈부셨던 아이.

삼십년의 세월이 우리를 어떻게 변하게 했을까?

눈가에 주름, 입가에 주름도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들 돌보느라 자신을 헌신한 삶의 흔적이 아닐까 한다.

학창시절 잘록했던 허리는 찾아 볼 수 없지만, 두루뭉술한 넉넉한 모습도 좋다.

중년의 문턱이지만 누가 뭐래도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이니 말이다.

피어 있어도 예쁘지만 떨어져도 고운 꽃을 나는 안다.

한파 특보에 찬바람이 연일 몰아치는데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마음을 녹여주는 산다화처럼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친구의 모습이 저 붉게 핀 산다화위로 환하게 웃고 있다.

처음 만난 열네 살 그 모습으로 책가방을 손에 잡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