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1.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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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제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논설위원

[제주일보] 며칠 전 본인이 소속된 대학에서 열린 어떤 이의 특강에 청중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필자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 사회에서 대의를 위해서 소수가 희생되어야 하는 풍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시간 관계상 마지막으로 받겠다던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무난했다. 내가 평소에도 그 사람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 중에 “(질문하신 분이)말씀하신 것을 너무 잘 알 수 있겠습니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오늘도 언론은 ‘북한 예술단 사전 점검단 방남’ 경쟁 보도로 바쁜 하루였다. 다음 달에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어 많은 이의 관심을 받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 중에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위해 희생을 해야 하는 선수 본인과 가족들이 있을 것이고, 남북 이산가족 상봉만을 평생 바라던 당사자들도 있을 것이다. 국가는 희비가 갈릴 수도 있는 이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남북 대화의 물꼬 트기에 여념이 없다’, ‘이미 기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도 반영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등등의 논리만 존재한다면 누가 그들의 말을 경청할까.

남북 선수 단일팀의 반대나 찬성을 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남북 선수 단일팀 구성으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소수의 의견조차도 국가는 반드시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포항 수험생들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가. 경청 후 비록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답을 못 준다 해도 그들의 의견을 국가는 진지한 자세로 경청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그들에게는 아주 작은 위로라도 될 수 있으므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적인 책임일 수도 있으므로.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조금 바꿔서 ‘입은 닫고, 귀는 열라’고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입장과 생각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의 얘기를 누가 그토록 경청해주고 있는지 잠시 숨을 돌려 생각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끈기있게 들어주는 지인이 내 주변에 한 명이라도 있는지 말이다.

예를 들어 맞벌이를 해야 하는 가정의 경우를 보자. 하루 종일 일하느라 지친 부모들은 자식들의 말에 얼마나 귀 기울여 주고 있는가. 혹시 상대의 마음을 살필 시간이 없어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는 말로 상대의 마음을 지레짐작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마치 심령술사라도 되는 것처럼 상대방의 말을 끊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고 있지는 않은지. 5분 동안의 상대방의 말에 대한 대가로 상대방은 듣기도 싫은 30분의 잔소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듣기평가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말을 하는데 상대방이 내 말을 끊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라고 하고선 아예 내게 설강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어느 전직 대통령처럼 “내가 다 해 봐서 잘 아는데…”라고 거드름 피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만.

‘풀꽃’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데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을 아는 것(know the person)과 그 사람을 (속속들이)알게 되는 것(get to know the person)은 다른 것이다.

살아가기 참 바쁜 시대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개인적인 휴식을 위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그 휴식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짬 내서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가기 이렇게 각박한 사회를 만든 일말의 책임이 있는 우리 사회나 국가도 부디 소수의 의견에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라는 말만 말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해줘야 하는 것이 그 소수자들에게 사회와 국가가 보여줘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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