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대정
하이! 대정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01.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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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수선화 꽃이 한창 피고있는 서귀포시 대정에 가면 왠지 모르는 울림이 있다. 사람들이 대정을 좋아하는 것은 그런 울림 때문이리라.

앞바다에서 서로 부르는 가파도와 마라도. 높은 산은 없지만 모슬봉(慕瑟峰: 187m)·가시악(加時岳:123m)·농남봉(農南峰:100m)·송악산(松岳山:84m)·단산(簞山:160m) 등도 어깨 동무를 했다.

대정의 울림은 이런 자연만이 아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동계 정온(鄭蘊) 선생. 그의 적거지와 유허비에 서면 오늘 이 지저분한 세상사가 우습기만 하다.

인성(仁城)·안성(安城)·보성(保城)에 축성된 대정성(城)은 울림의 절정.

성에 오르면 타락한 세상을 꾸짖는 민초들의 함성과 장두(狀頭) 이재수의 호령소리가 들린다. 추사와 동계의 적거지에는 아이들이 책 읽는 소리가 낭랑하다.

그런 대정에 이제는 고급 외제차들이 ‘빠앙~빵’ 경적(警笛)을 울린다.

이 곳에 자리잡은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브랭섬홀아시아 같은 해외 명문학교 제주 분교 4개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자가용들이다.

▲100만평이 넘는 대정 제주국제영어도시의 학생들은 상당수가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 외국인 자녀들이고 절반 가량은 서울 등에서 유학 온 우리나라 아이들이다.

현재 학생은 4000여 명. 3년 후인 20 21년에는 7개교 학생 9000명에 학부모 등을 합쳐 2만명이 이 단지에 거주할 것이라고한다. 그래서 대정에는 어디를 가나, 영어로 ‘하이(Hi)! 대정’이다. 이들이 대정을 바꾸어놓고 있다.

대정은 바람이 거세고 땅도 척박해 세상의 끝이라고 했던 곳이다. 사람이 달라지니 바람도 꼬부라진듯 옛날 그 바람이 아니다. 정권에 밉보여 유배(流配) 온 사람들이 많아 유배인 문화가 피어났던 대정이 이렇게 변해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나 뿐일까.

옛 대정, 울림이 있는 대정. 그 대정의 역사와 옛 이야기들을 스토리텔링해 브랜드화할 수는 없을까.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13세기 이탈리아 베로나의 귀족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퓌라무스와 티스베’와 꼭 닮았다.

그런데도 이탈리아 베로나 시(市)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자기네 도시에서 살았던 역사적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다음 도시 광장 인근에 당시의 건축 양식을 모방한 줄리엣의 집까지 만들고 로미오가 타고 올라갔던 발코니도 설치해 놨다.

모든 거짓말이 다 그렇듯이,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쉽다.

시 당국은 아예 주변의 수도원 지하실에 돌로 만든 줄리엣 무덤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매년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줄리엣에게 보내는 멋진 연애 편지를 쓴 사람에게 상(Dear Juliet)까지 준다. 거짓말도 이쯤되면 예술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베로나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대박을 터뜨렸다.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것이다.

▲대정성에 가면 안내문 같은 게 붙어있다. 축성연도를 비롯해 성의 구조, 언제 중수됐으며 높이와 크기는 얼마이고, 현재 남아있는 크기는 어떻고 등.

너무나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차라리 성벽 한 쪽에 옛 모습의 장대(將臺)를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이재수와 농민군이 봉기한 곳이라고 스토리를 적어놓으면 어떨까. 여기에 이재수는 어떻게 민초들의 대표가 되고 그의 신분이 관노(官奴, 관청의 노비)라는 점을 생각하며 간단한 의문문만 표시해도 관광객들이 역사적 관심을 크게 갖지 않을까.

관청의 노비와 농민들이 그들을 옥죄었던 관리들을 제거하는 데서 출발한 이야기가 끝내 종막까지 이어지면 금상첨화다. 여기에 추사 김정희나 동계 정온선생이 유배 당시 가족과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아 이야기를 전한다면 어떨까. 유배인과 현지 처녀의 사랑 이야기는 또 어떨까.

영어도시는 영어도시일 뿐, 대정이 아니다. 옛 대정의 울림을 스토리텔링하면 브랜드가 되고 정말 ‘대박’이 터질 것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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