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눈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 잡으라
죽은 이는 눈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 잡으라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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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해와 상생의 상징 ‘하귀 영모원’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조성된 영모원(英募園).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한다’는 뜻을 가진 영모원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4·3에 이르기까지 희생된 370여 명의 마을 출신 인사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화해와 상생의 4·3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다. 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올해 2018년은 제주4·3 70주년의 해이다. 

제주일보는 올해 4·3의 아픔을 화해·상생·평화·인권의 미래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해 제주4·3의 길과 유적지를 둘러본다. 이번 기획은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함께 한다.

제주4·3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 길과 장소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은 제주4·3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살아 숨 쉬는 역사라는 점을 알려줄 것이다.[편집자주]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영모원 4·3희생자 위령비 비문

제주4·3을 이야기할 때 늘 함께 하는 말은 화해와 상생이다. 死·삶, 죽음과 삶의 공존이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는 늘 언제나 제주4·3의 화두였다.

화해와 상생.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조성된 영모원(英募園)은 화해와 상생의 4·3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다.

하귀리는 일제강점기 때 도내에서 가장 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했고, 4·3 당시에도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당했던 마을이다.

하귀리는 4·3 당시 1구와 2구로 이뤄졌는데 비학동산 학살사건 등으로 32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4·3 이후 1구는 동귀리, 2구는 귀일리로 마을 이름을 바꿨다. 이는 이념으로 덧칠된 ‘하귀리 출신’에 대한 피해의식에 따른 것이었다.

영모원 조성을 주도했던 고창선씨(83)는 “4·3 이후 하귀리는 빨갱이 마을이라는 이유로 젊은이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공공기관 등에 이력서조차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며 “오죽했으면 마을 이름을 바꿀 생각까지 했겠느냐”고 말했다.

마을이 갈라지니 사람들도 갈라지고, 잦은 갈등이 발생했다. 이에 갈라진 마을을 다시 하나로 합치려는 노력이 있었고 1993년 두 마을은 하귀1·2리로 하나가 되었다.

이후 하귀리발전협의회(공동위원장 고창선·배광시)를 중심으로 4·3희생자와 일제시기 항일운동가, 한국전쟁 전후 호국영령 등을 한 곳에 모셔 추모하기로 하고 영모원 조성에 나서 2003년 5월 27일 제막식을 가졌다.

마을 주민들은 행정기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마을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았으며, ‘우리 모두는 희생자이기에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한다’는 뜻을 가진 영모원에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4?3에 이르기까지 희생된 370여명의 이 마을 출신 인사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다.

위령단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위국절사 영현비’와 ‘호국열사 충의비’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4?3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다.

각 비석 앞에는 제단을 놓지 않고 중앙에 있는 위령단에만 분향함으로써 마을 출신 모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도록 했다.

매년 음력 초사흘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물론 다른 지방과 일본 등지에 사는 출향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위령제를 올린다. 사실상 마을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장소인 셈이다.

영모원을 찾았던 성경륭 한림대 교수는 “영모원의 사례처럼 갈등 당사자의 유족들이 보인 사랑과 용서로 화해와 상생의 해법을 찾은 것은 실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며 “한국사회의 국민통합을 이야기할 때 모두 ‘제주를 보라’, ‘제주에서 배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별이 없는 곳. 그 곳에 제주4·3의 미래가 있다.

찾아가는 길=애조로를 따라 애월 방면으로 가다가 제주서부경찰서 가기 전 하귀1리 교차로에서 한라산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길 우측에 영모원이 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 1134-1.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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