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오지’ 뒤로하고 다시 꿈꾸는 ‘미지의 세계’
‘21세기 오지’ 뒤로하고 다시 꿈꾸는 ‘미지의 세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1.19 0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부. 아시아의 중심 투바공화국을 가다
(27)사슴족과 샤먼의 고장 투바를 찾아서<9>-투바여행을 마치며
오래 전 큰 산불이 났었는지 타다 남은 나무들이 가득하다. 검게 그을린 나무 사이로 새로 자란 자작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대조를 이뤄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제주일보] 오지여행을 올 때마다 저 자신의 인내심에 대한 시험을 많이 합니다. 이를테면 아주 힘들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 울 때 어떻게 그 환경을 이겨 내는 가, 극한 순간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

다행히 30여 년 가까이 오지를 여행하면서 큰 사고는 없었지만 몇 차례 생각하기도 싫은 순간도 있었답니다.

한 번은 몽골 알타이산맥을 종주할 때입니다. 알타이지역 라담축제 출전예선 경기를 보고 경사가 심한 산 위에서 계곡으로 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천천히 가도 위험천만한 곳을 운전기사가 아무 생각없이 금방이라도 차가 뒤집어 질 것 같은 속도로 달렸었죠.

정상적인 길도 아닌 초원지대를 거침없이 달려 순간 차가 뒤집혀지는 것 같았습니다. 앞좌석에 앉은 저는 있는 힘껏 손잡이를 잡고 몸을 뒤로 했지만 온 몸이 앞 유리창으로 떠밀려 아찔했습니다. 운전기사도 위험을 느꼈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경사면을 미끄러지듯 내려갔습니다.

아차하는 순간이었는데 다행히 경사진 방향으로 차가 돌아 멈춰서 위기를 모면했죠. 운전기사는 미안하다며 손을 비볐지만 우리는 정신이 반쯤 빠져버린 것 같았습니다.

초가을의 시베리아 샤얀산맥의 모습.

또 어느 여행 때는 일행 중 한 사람이 어찌나 말썽을 피우는지 여행기간 내내 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 적이 있었답니다. 몸 고생이야 참을 수 있지만 정신적 고통은 정말로 참기 어려운 일이란 것을 그 때 느꼈습니다.

오지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자신의 인내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여행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때문에 오지여행 팀을 구성할 때 잘해야 한다지만 사람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번 여행이 바로 그런 형편이군요.

어제 이곳을 지났지만 오늘 다시 보니 또 다른 모습으로 보입니다. 날씨 때문일까요. 파란 하늘에 뭉개구름이 떠있고, 자작나무들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시베리아의 초가을 풍경이 그나마 마음을 위로해 주는군요.

그런데 주변 산을 자세히 보니 오래 전에 큰 산불이 났던 모양인지 불에 타다 남은 나무들이 가득합니다. 검게 그을 인 나무 사이에서 자란 어린 자작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색다른 모습입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요란스런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한 무리 말 떼가 벌판을 달려옵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지 순식간에 달려가 제대로 사진도 못 찍고 서성이는데 군 트럭 두 대가 서더니 우리가 탄 차를 세우고 수색을 하네요.

어디서 왔는지 한 무리 말 떼들이 초원을 달리고 있다.

혹시 불법 수렵을 했는지를 확인하는 산악경찰이라는군요. “외국인 같은 데 어디까지 다녀왔느냐. 조금 가면 아주 아름다운 곳이 있는데 그곳에 다녀오는 길이냐”고 묻는군요.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인은 처음이다. 반갑다”며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산악경찰이 “조금만 가면 아름다운 곳이 있다”고 하는데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만 우리는 그곳을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비포장 산악도로를 한참을 달려 나오니 시원히 뚫린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주변 산들은 마치 몽골의 산처럼 나무 한 그루 없이 민둥산으로 멀리 수많은 양 떼들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마치 몽골 초원을 달리는 기분입니다.

한참을 달려 다시 초원으로 들어갑니다. 좀 더 가면 ‘샤먼의 성소(聖所)’같은 곳이 있다는군요. 잔뜩 기대는 해 보지만 그동안 매번 실망을 했기 때문에 그리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샤만의 성소(聖所)’라는데 제주도의 당만큼도 신령스럽지 않다. 기둥을 세우고 울긋불긋한 천들이 걸려있다.

초원지대를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바위 산 아래입니다. 티벳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수두파와 작은 집이 하나있고 주변 나무에 파란 천들이 걸려있는데 이곳이 샤먼들의 기도장소이고 또 한국 등 주변 나라 샤먼들이 이곳에서 신기를 받는 곳이라는 설명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신령스런 장소는 아닌 듯 싶어 “그러면 그렇지. 크게 기대를 안 하길 다행이지”하고 혼잣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라마불교의 모습 같기도 한 탑과 시설들, 그러고 보니 어는 자료에 투바에서는 라마승과 샤먼의 결혼은 종종 있는 일이고 상대 종교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투바인들의 의식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합니다.

산 위에 있는 탑. 라마사원에 있는 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투바의 전통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샤머니즘은 소비에트 시기 정부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았으며, 1950년대들어 유목에서 정착으로 삶의 방식이 전환되면서 샤먼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투바 정부의 지원으로 샤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21세기 현대 투바 사회에서 샤먼이 갖는 사회적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답니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잘 알고 있는 한국의 유명한 무당 한 분은 1년에 한 번은 꼭 투바에 와 신기를 받아 간다고 했답니다. 그곳이 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 제주도에 있는 당(堂)만큼 신령스러운 장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썩 맘에 들지는 않았던 여행이었지만 아시아의 중심국가인 투바공화국에 와서 사슴족이 사는 현장도 가보고, 서부 시베리아 벌판도 달려보고, 샤먼의 성소도 봤으니 이제는 귀국하는 일만 남은 것 같군요.

키질에 도착해 21세기 오지라는 투바공화국 여행을 마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만 마음은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꿈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