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막고 눈 감으니...
귀 막고 눈 감으니...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1.1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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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기자] 음악인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이름이 나 있는 우리 음악으로 사물놀이라고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사물놀이는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음악 가운데 하나라고 입을 모은다.

사물놀이가 내는 소리의 다이내믹함과 강도를 다른 나라의 악기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물놀이는 사물(四物), 꽹과리 장구 북 징 이 네 가지 악기 놀이(연주)다. 그런데 이들 네 가지 악기 가운데 유독 북은 연주의 타이밍이 다르다. 맞장구친다는 말처럼 꽹과리를 칠 때 장구는 호흡을 맞추며 쉴 새 없이 소리를 낸다.

그런데 북은 장구나 꽹과리처럼 계속 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끼어들어 꽹과리와 장구 징과 어울리는 소리를 낸다. 그렇다 보니 왕왕 타이밍을 놓치는 일이 발생한다. 여기서 나온 게 다름 아닌 ‘뒷북’이다.

국어사전에서 ‘뒷북’을 찾으면 ‘뒤늦게 아는 척 하다’는 정도쯤으로 정의 된다. ‘사후 약방문’ 또는 소 읽고 외양간 고친다는 고사성어와 유사한 의미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주말 제주를 덮친 폭설과 강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한심하기 짝이 없었던 당시의 대응을 놓고 ‘뒷북’이 요란하다.

#한파 폭설로 대중교통 차질

지난 11일부터 12일 오전까지 북서풍을 타고 제주로 들어온 눈구름대가 성산포를 중심으로 제주 동부지역을 덮쳤다. 동쪽이 조금 더 긴 타원형 형태인 제주의 지형을 쫓은 눈구름이 동부 지역에 더 오래 머물면서 이 일대를 때렸다.

그렇다고 다른 지역을 그냥 지나친 것은 아니다. 11일에서 12일 오전까지 적설량은 성산지역이 최고 22.5㎝를 기록했다. 이는 1977년 2월 17일 25.4㎝, 1977년 2월 16일 24.3㎝, 2001년 1월 16일 23.6㎝에 이어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역대 4위의 기록이다.

제주(북부) 7.0㎝, 서귀포(남부) 5.8㎝, 고산(서부) 2.5㎝ 등의 기록을 남겼다. 강한 바람까지 동반한 한파로 제주공항은 3차례나 활주로가 폐쇄됐다. 여객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하지 못하는 운항 중단 시간은 5시간이나 됐다. 이 때문에 2000명이 넘는 항공기 이용객들이 제주공항에서 노숙 아닌 노숙으로 고생해야 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일주도로 뿐만 아니라 제주 중산간 지역을 달려야 할 버스 운행에 파행이 잇따랐다. 예고된 한파에 하늘길 차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중교통체계 개편이후 첫 한파에 ‘땅길’마저 곳곳이 끊겼다. 대중교통에 의존하는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다.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며 시민들은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

제주 중추 교통망이 일순간 무너졌다.

#내 집 앞 눈치우기도 실종

과거 한 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냈던 ‘내 집 앞 눈치우기’도 자취를 감췄다. 대로변은 물론 골목길 건물 입구 마다 수북하게 쌓인 눈 속에 파묻혀 제주가 꼼짝달싹 못했다.

제주도 자연재해대책 조례는 ‘건축물관리자의 제설책임’을 두고 있다. 건축물관리자는 건축물의 대지에 접한 보도·이면도로 및 보행자전용도로에 대한 제설·제빙작업을 해야 한다. 조례는 법률의 위임에 의하여 시민들에게 강요된 행위를 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인데, 이조차 맥을 못 췄다.

예고된 한파예보에 귀를 막아 허둥댄 행정과 무릎까지 쌓인 눈을 보고도 눈감아 대문을 걸어 잠근 질 낮은 시민의식이 약속이나 한 듯 제주의 격(格)을 처참하게 끌어 내렸다.

한파가 물러간 직후인 지난 1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주간정책회의를 주재한 뒤 폭설에 대한 비상 대처 시스템 점점과 전반적인 교통안내 및 운영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고경실 제주시장은 하루 뒤인 지난 16일 간부회의에서 한파대응능력 부족을 실토했다.

행정은 귀를 막고 시민들조차 눈을 감은 새 제주는 또 한파 앞에 무릎 끓었다. 2년 전 사상 최악의 한파의 쓰라림을 그새 잊었다.

귀 막고 눈 감은 결과다. ‘뒷북’이 유독 크게 울리는 이유가.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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