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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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1.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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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제주일보] 황금 무술년 새날이 밝았다. 여느 때와 달리 전국에서 해맞이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평선 너머 쟁반 위에 올린 사과처럼 붉은 해를 내 가슴에 빨려들듯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한다. 사람들은 연례행사처럼 해맞이 하면서 가족의 안녕을 빌고 또 빈다. 올 한해에는 가내 평안도 바라면서 무슨 일이든 술술 풀리기를 기대해본다.

개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 중 하나이다. 누런 개를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푸근하고 풍요로운 느낌을 받는다. 용맹하고 충성심이 많아 주인을 잘 따른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적,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한 누렁이는 시골 고모 집 마당 구석에 으레 자리하여 낯선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누렁이는 방학 때만 찾아간 나를 주인이 아닌 줄을 감으로 알았는지 나의 허벅지를 물고 말았다. 황금빛이 예쁘다고 느껴도 한 번도 안지 못했다. 나는 동물과 친숙해지는 방법을 몰랐었나보다. 요즘엔 개 팔자가 대접받는 세상이다.

천리포 입구에서 보았던 빠삐용이 생각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흰색에 누런 무늬가 많은 애완견이 노인을 재촉하는 듯이 걷다가 멈추는 모습이 귀여웠다. 긴 털에 쫑긋한 귀를 세우고 동그랗고 새까만 눈으로 갸우뚱 거리기도하고 종종걸음이 인상 깊었다. 털이 긴 머리를 두 갈래로 묶고 핀을 꼽았다. 노인의 강아지 애착심은 몸통에 앙증맞은 붉은색의 옷을 입혀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다리까지 고른 털갈이도 미용 분장실에 다녀왔는지 정갈하다. “빠삐용, 천천히 가.”노인에게 왜 빠삐용이라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강아지 품종 이름이라 하였다. 친구처럼 이름을 부르는 노인의 발걸음이 서로를 의지하는 형국이다. 이러고 보면 말 못 하는 짐승이 섣부른 인간보다 낫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우연히 티브이를 시청하다가 가수 G의 반려견이 나왔다. 그의 부인 K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된 G와 팬 사이에서 눈물시린 병원 간호를 하였다. 결혼을 하였으나 십 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둘은 자식처럼 애완견을 키우고 서로 말벗을 하며 사람 목숨처럼 귀히 여겼다. 애완견도 암이 걸리는지 시한부판정을 받고도 이 년을 더 사는 시점이었다.

어느새 K도 임신 하고 닭고기와 다른 영양소와 약을 첨가하며 건조기에서 강아지 전용 먹을거리가 되어 나왔다. 사람에게 이보다 더한 정성이 있을 수 있을까. 오래 지내다 보면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는 서로 앓는 소리만 들어도 알아차리는 모양이다.

K는 반려견이 눈 내린 해수욕장에서 마구 뛰어놀았던 시절을 상기시키며 마지막 추억의 선물을 주려하였다.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가던 중 휴게소에서 뛰어나간 반려견이 생을 마감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K의 아낌없는 사랑에 힘찬 박수를 보내며 나의 목울대가 시려 왔다. 산달이 머지않은 K는 숨을 거두어 뻣뻣해진 반려견을 포대기에 싸안고 온기가 남아 있다면서 울먹거린다. 반려견이 아기로 환생하였을까.

주위에 있는 미물이라도 자기와 큰 인연이 있기 때문에 함께 지낸다고 한다. 수없이 생사윤회를 거듭하면서 전생에 나의 부모•형제가 아닌 분이 없다. 이승에 형제의 인연으로 만난다고 여기면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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