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시험과 '얼굴없는 사람들'
탈무드 시험과 '얼굴없는 사람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01.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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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수천년 전 유대인의 고전 탈무드(Talmud)에 이런 시험 문제가 나온다.

만약 머리가 둘 달린 아기가 태어났다면 그 아기를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두 사람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 답은 간단하다.

한 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 다른 쪽 머리가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아무렇지 않으면 두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기를 둘로 나누겠다고 위협해 진짜 엄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처럼 절묘하다.

그런데 2011년 실제로 브라질에서 머리가 둘 달린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의 가족들은 머리가 두 개인 만큼 쌍둥이로 여겨 각각 제수스와 엠마뉴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후 제수스와 엠마뉴엘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의사들은 어느 한 쪽이 죽게 되면 다른 한 쪽도 무사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리는 알고 모르는 사이에 탈무드의 테스트같은 시험을 숱하게 치른다.

가령 북한과의 관계만 해도 그렇다. 북한 주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들을 때 우리는 그 고통을 일부라도 느끼는가.

아니면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딱하기는 하지만 신문을 덮는 순간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가.

그래서 북한 주민의 고통이 아프리카 소말리아나 남수단 같은 먼 나라 사람들 얘기로 여겨지는 건 아닌가.

탈무드의 지혜가 가르치듯, 남북(南北)이 여전히 하나의 민족이냐는 심각한 의문을 잠재울 수 있는 ‘고통의 전이(轉移)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아무리 형제 간이라고 해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동만 골라서 한다면 계속 관용과 사랑으로 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북한의 도발 행동과 인권 유린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우리 국민의 혐오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북한 주민의 고통을 모른 척 하고만 있어도 괜찮은 걸까.

문제는 북한 정권이 하는 짓이 싫고 가증스럽다고 등 돌리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실 북한에 대한 혐오감은 그들이 ‘얼굴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다. 김정은을 신격화하는 거대한 코미디 극장의 배우가 된 북한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들의 비극, 고통은 추상화돼버린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과거가 있다. 일제 시대에는 신사(神社)에 참배했고, 유신 시대에는 국민헌장을 앵무새처럼 외우고 다녔다. 또 전두환 군사 독재의 해괴한 ‘정의’를 따르기도 했다.

우리도 한 때는 일본 왕실과 괴상한 헌장과 해괴한 ‘정의 사회’ 앞에서 절하고 외우고 박수 치던 ‘얼굴없는 사람들’이었다.

진정한 이해는 상대방에 대한 구체적 관심없이는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가려보는 분별지(分別智)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북한 사람들에 대한 포괄적 혐오감도 덜어지고 민족 동체관(同體觀)이 우리에게 자리잡을 것이다.

▲타인의 인권에 대해 무관심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순간 우리 자신의 인권이 위협받는 때문이다.

남과 북이 판문점에서 만나기로 한 날, 동해에 표류하던 북한 어선에서는 숨진지 오래돼 백골이 된 시체 4구가 발견됐다. 같은 날 울릉도 부근에 표류하던 또 다른 북한 어선에서는 한 사람이 살아 대한민국에 귀순을 요청했다.

일본 근해에는 한 척에 많게는 8구의 시체가 있는 북한 백골 유령선이 한 해에 수십척 발견되고 있다. 남한에서는 북한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들이 한 해 2400명씩 한을 품고 숨지고 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이나 죽기 전에 북쪽의 가족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이산가족들은 모두 ‘이름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희망은 하나. ‘사람다운 삶’이다.

불교에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가르침이 있다. 모든 사람과 나는 ‘다르지 않고’ 한 몸이라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큰 사랑을 말한다.

‘평창’을 계기로 판문점에는 탈무드의 시험장이 마련됐다. 남과 북은 이 땅의 ‘얼굴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씻어줘야 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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