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붕대천(俱朋戴天)의 2018
구붕대천(俱朋戴天)의 2018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1.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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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 / 전 중등교장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18년이 밝았다. 데면스런 사이라 해도 나누는 인사이다. 기도(祈禱)를 모르는 사람도 그 마음이 깔려있는 축원(祝願)이다.

복(福)은 하느님의 베풂이다. 젓가락(一)을 들며, 하늘이 주신 온 식구(口)에게 모자람이 없도록 밭(田)에서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늘이 베풀어 내보이(示)는 가득함(畐)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복(福)이다.

‘보이다(示)’는 ‘육신의 눈으로 보다(見·See)’와 다르다. 이를테면, 몸가짐을 삼가(斤)는 것을 우선 보여야(示) 하며(祈), 목숨(壽)까지 내어놓음을 보일(示)만큼 간절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기도(祈禱)이다. 주체인 하느님이 베풂(beneficence)을 보일 때까지. ‘좋은 아침!(Good morning)’도 기도이다. ‘그것을 소망한다(I wish you)’가 생략 된 것이다.

어진사람(儿)의 입(口)에서 나오는 말에서 참으로 따뜻함과 힘을 얻게 된다. 그런 사람은 형(兄)처럼 느껴진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하늘이 베풀어주심이 축(祝)이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돈(具)을 보태어(加) 주며(賀) 힘을 북돋아주는 일이 축하(祝賀)이다. 그러니 축하 받을만한 일은 하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서로 합장(合掌) 해야 할 것이다.

정년퇴임 전 일이다. 학교수학여행 책임자로서 인솔을 다녀오게 되었다. 전세버스 차량연령, 운전기사경력 등 행정적 확인을 다 마쳤는데에도 왠지 걱정스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교직원주간회의 자료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것은?’ 질문 했다. ‘기도입니다. 무탈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학교장의 부탁이었다. 잔류학생 없이 100% 출행에, 모두 맑고 밝게 귀교했다. 선생님들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 주신 것 아닐까.

기도는 살아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은 기도를 할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함께(俱/together with) 하늘을(天)을 머리에 이고(戴) 살아가는 것이 세상(世上)이다. 세로 획 셋은 사람들이며, 가로 획 둘은 관계맺음이며, 맨 아래 가로 획은 땅이다. 즉, 사람들끼리 서로 더불어 땅을 딛고 하늘을 머리에 이어 사는 상형(象形)이 인간 세(世)일 것이다.

‘아버지의 원수(怨讐)는 하늘을 같이 이고 더불어 살 수 없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는 집에 가서 무기를 가지고 올 새도 없다. 항상 무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만나는 순간 죽여야 한다.’ 중국 곡례(曲禮)에 나오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의 유래풀이이다.

북한 정체(Regime)의 김일성, 그에 이은 김정일도 모두 자연사(自然死)했다. 남한을 원수라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칼을 갈아 뒷짐에 쥐고, ‘같이 나누어 먹으며 사는 게 한 민족 아니가’라고 구술(口述)한다. 그들의 모몰염치(冒沒廉恥)에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념(理念)이란 함께(俱) 잘 살아 가기 위한 방법적 철학이다. 살상이 방법으로 포함될 때, 그것은 이념이 아니다.

예(禮)란 무엇일까? 넉넉함(豊)을 보여주는(示) 것이다. 하룻밤만 묵고가게 해달라는 나그네에게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저녁까지 먹도록 베풂이 예(禮)이다. 칼을 녹여 보습을 벼릴 줄 모르면서도 평창올림픽엔 오겠다하니…, 굶길 수야 있겠는가.

 

벗들(朋)과 함께(俱)

하늘을(天) 머리에 이고(戴)

염치(廉恥)를 차려 갖추며

서로를 위한 기도의 삶에서

2018을 이어가게 하소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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