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많아진 제주 신구간
손이 많아진 제주 신구간
  • 제주일보
  • 승인 2018.01.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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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 / 논설위원

[제주일보] 신구간을 정해서 이사를 하고 집을 고치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제주도만의 풍습이다. 이사나 집수리 외에도 평소에 금기시 되거나 꺼렸던 일들을 신구간에 처리하면 아무런 후탈이 없다고 여겨져 왔다. 특히 신구간에 새집에 입주하거나 이사하는 관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신구간은 과거 제주의 생활기반인 농경사회에서 유래됐다. 제주도민 전체가 농업으로 먹고살아야 했던 예전에는 바빠서 밀어두었던 일들을 신구간에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새봄을 맞을 수 있었다. 가장 추운 절기인 대한 후부터 입춘 전까지 신구간을 이용하면 농한기라서 일손이 여유롭고, 이 때 이사하고 집수리를 하면 바쁜 농사철을 피하고 새로운 일 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따뜻해지기 직전의 추운 겨울이라서 5℃ 이하의 기온을 유지하기 때문에 세균의 활동이 정지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기간에 이사를 하거나 집과 변소를 개량하면 세균감염 등의 질병도 예방할 수 있어서 과학과 지혜가 숨어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신구간은 매우 불편하고 비합리적인 폐습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가옥, 화장실, 부엌, 가구 등 주변의 도구들이 모두 천연재료들로 만들어졌다. 집안의 가구들도 원목으로 만들어졌고 마루와 방바닥 광택제도 식물성 기름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모든 도구가 천연재료이었고 화학제품은 기껏해야 비누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주거공간은 어떤가? 건축자재나 집안의 가구들은 원목 대신에 대부분 파티클보드를 사용한다. 파티클보드는 쓰고 남은 폐목재나 톱밥을 모아서 접착제와 혼합하여 압축, 가열한 가공목재이다. 이러한 접착제에는 포름알데히드나 비스페놀 A 등과 같은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접착제를 녹일 때에는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자일렌) 용매를 쓴다. 여기에 사용한 화학물질들은 모두 인체에 유해한 독성이거나 발암성 물질들로 ‘새집증후군’이라는 질병을 일으키고 피부 아토피, 호흡기성 질환을 유발한다.

또한 실내 벽면이나 가구류 표면에 코팅된 페인트나 투명 바니쉬 역시 모두 이러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 더욱이 요즘에는 거실이나 방바닥의 바닥재까지 예전에 주로 사용했던 목재나 석판 대신에 모노륨이라는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또 천장과 벽면의 벽지조차도 종이 대신에 물에 젖지 않고 물걸레 청소가 가능한 플라스틱 재질로 대체되고, 도배용 접착제까지도 밀가루 풀 대신에 라텍스 같은 화학물질로 바뀌고 있다. 바닥재나 벽지 역시 휘발성이 강한 화학물질들을 실내로 배출시킨다. 이처럼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들이 대부분 화학물질이고 천연재료 제품은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오래다.

화학제품에는 필연적으로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 미량의 화학물질들이 포함되게 마련이고 서서히 기화돼 실내 공간을 오염시키게 된다. 특히 주변 온도에 따라 크게 차이를 보이고 초기 6개월 동안에 많은 양이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 신구간은 어떠한가? 가장 추운 시기에 급하게 지어져 페인트도 채 마르지 않은 상태의 새집에 급하게 입주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또 주부들은 대부분 새집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옷장, 소파, 침대, 식탁 등의 가구까지 새 것으로 교체해 입주한다. 이 경우 추운 날씨 때문에 실내 환기가 어려워 화학제품에서 배출된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집안에 고농도로 농축된다. 그리고 실내를 가득 채운 가스상 오염물질을 호흡하면서 봄이 올 때가지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처럼 손이 없다는 제주 신구간이 현대인의 생활공간에서는 건강에 유해한 손이 많은 요소들을 안고 있다. 제주의 전통 풍습이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건강을 위협하는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제도로 변한 것이다. 새집을 지어서 새롭게 입주하는 시기는 자연적으로 통풍과 환기가 잘 이루어지는 따뜻한 봄철로 바뀌어야 이러한 새집증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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