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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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18.01.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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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제주일보] 몇 년 전부터 다큐멘터리가 인기다. 극장 개봉을 해서 웬만한 극영화보다 흥행을 하는 것도 이젠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지난해는 특히 대선을 치룬 해라 그런지 시사 다큐에 더 관심이 집중됐다. 80년대 운동권이 “영화는 사회운동에 기여해야한다”라는 ‘영화운동론’을 주창해서 만든 당시의 독립영화 보다 지금의 다큐가 더 전문적이고 자극적이며 조직적이고 사회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사회운동으로서의 영화 기능을 다큐가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꿈틀거리는 사회의 관심사를 거의 동시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작기간이 오래 걸리는 영화는 물론이고 그보다 빠른 TV도 맞출 수 없는 속도이다. 시대와 민중의 욕구를 반영하는 게 대중매체와 대중예술이라면 속도에서 시사 다큐나 1인 TV, 인터넷 방송 등이 기존 매체를 훨씬 앞서고 있다.

기술면에서도 그렇다. 1995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주도로 네 명의 젊은 덴마크 영화감독은 영화집단 ‘도그마 95’를 만들었다. 삼각 트라이포드를 거부하고 손으로 들고 찍어야 하며 인위적인 조명과 세트, 특수효과, 필터 등의 사용을 배제한 지극히 자연스런 현장을 그대로 담아야 한다는 윤리헌장을 가진 게 ‘도그마 95’이다. 10년 만에 이 운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해체하지만 기술적으로 ‘도그마 95’가 주창한 그대로 재현하기 좋은 게 다큐멘터리이다.

당시에 이미 유럽은 다큐멘터리가 강세였고 관객을 설득하기에 극영화 양식보다 다큐멘터리 양식이 더 실효성이 좋다는 걸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즉 극영화는 거짓말(세트나 연기 등이 사실과는 다르다)이지만 믿어달라는 거라면 다큐멘터리는 사실 그대로 보여주니 그대로 믿으라는 방식인 것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명한 음료제품 속에 몸에 유해한 성분이 발견됐다는 다큐멘터리가 발표됐다. 이에 대중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집중됐고 그 제품은 최단 시간에 판매가 제로가 됐다.

망하게 된 음료 회사의 사장은 화를 누르고 다큐 감독을 불러 직접 눈앞에서 실험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오히려 몸에 좋은 성분들이 많다는 걸 증명해줬다. 이를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가 다시 방송 됐다. 이에 그 음료의 매출은 전보다 더 뛰어올라 그 해의 최고 음료가 됐다.

이 얘기는 다큐멘터리의 힘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로 여러 번 언급되는 실화이다. 또한 이 얘기는 대중이 얼마나 잘 휩쓸리고 스스로 판단을 못하는 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도 꼽힌다.

극영화 종사자 역시 다큐멘터리 기법의 힘을 잘 안다. 그래서 극영화들도 흔들어 찍고 필요하면 인위적인 조명까지 거부하며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있는 그대로를 믿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망이 점점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 인기를 끄는 연예 오락프로 역시 이 욕망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프로들이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고 만들기도 쉬우면서 영향력이 강하다보니 최근 다큐멘터리가 많이 만들어 진다. 그러다보니 다큐 ‘김광석’으로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씨가 감독인 이상호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너무 억울하다는 그녀의 항변 중 “나도 다큐멘터리 만들겠다!” 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 맨’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삼촌이 이제 막 초능력을 얻게 된 조카, 피터에게 해주는 인생의 충고다. “피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 이 말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피터에게 큰 지침이 됐다.

다큐멘터리의 큰 힘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 그 힘만큼 책임을 다 할 때 대한민국 다큐멘터리가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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