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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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 논설위원

[제주일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우리’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우리 동생’, ‘우리 강아지’ 등 수없이 많다. 가족과 친지 앞에 ‘우리’라는 말을 쓰고 학교나 집 등 우리가 다니고 생활하는 곳에 대부분 ‘우리’라는 말을 접두어로 사용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그렇게 쓰라고 배워보지도 않았다. 태어나서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영어권에서는 ‘우리’라는 말이 흔치 않다. 어머니를 얘기할 때는 ‘마이 마더’(My Mother), 아버지를 얘기할 때는 ‘마이 파더’(My Farther), 즉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한국어에서의 ‘우리’의 용법은 상당히 넓다. 복수형이 들어가지 않는 자리에도 ‘우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나의(내)’ 대신 사용하는 표현이다. 물론 ‘우리’가 집단적인 사회 현상에 쓰이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우리’는 정겨움이고 ‘우리 언제 다시 만날까’ 할 때 기다림과 그리움이 함께 담겨 있다.

최근에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다큐영화를 본 적이 있다. 환생한 9살된 아이의 이름은 파드마 앙뚜, 여느 아이에 비해 작은 체구지만 평범한 동자승이 아니라 ‘린포체’다. 라다크 사람들은 린포체를 부처와 대등한 존재로 존대하기에 모두들 이렇게 이 아이의 축복을 원하는 것이다. 린포체는 전생에 고승이었던 사람이 생명을 다한 후에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티베트 불교에서의 린포체들은 전생에 다 이루지 못한 업을 잇기 위해 몸을 바꿔 환생한 것으로 여긴다.

영화 얘기를 좀 더 해본다. 배경은 히말라야 산맥이 휘감고 있는 지역에 위치한 라다크. 아주 추운 곳이다. 그러나 어린 린포체와 노승 우르갼의 사랑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뭉클하게 만든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노승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은 생경하지만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감동스럽게 다가온다.

여기에다 60살이 넘도록 차이나는 어린 린포체를 진짜 자신의 스승처럼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는 우르갼의 미소는 눈물 짓도록 아름답다. 그 둘 간의 사랑의 모습들이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며 몰입하게 만든다. 하여 그들의 모습을, 그들의 이야기를 간절히 응원하게 된다.

눈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서로 손잡고 ‘우리’라는 말로 삶의 기나긴 여정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 그리고 주변의 영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나게 하는 영화다. 문창용 감독이 9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에 대한 얘기를 입이 닳도록 많이 하지만 과연 ‘우리’에 대해 진정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그저 그런 대로, 아무 생각없이 입버릇처럼 했을 수도 있을 테고 떠나간 가족, 떠나간 연인을 생각하며 슬퍼하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면 즐거운 추억을 떠올리며 새삼 ‘우리’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한 해가 저문다. 2017년 태양이 뜨겁게 떠오른 것이 어제 같은데 서서히 사라지려 한다. 올 한 해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줬을까. 정치와 경제, 지구촌 구석구석 많은 변화가 있었겠지만 과연 우리 마음 속에는 어떤 물결의 흐름이 있었을까.

물론 내일은 내일 또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고 태양은 어김없이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올해에 생각했던 것, 올해에 사랑했던 것은 영원히 흐르는 물결 속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한 해가 끝날 무렵 지난 날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되새긴다.

자, 그렇다면 어찌할 거나.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우리’를 생각하는 따뜻함을 말이다. 그 따뜻함은 평화요, 행복이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매듭을 스르르 풀어주게 하는 묘약이다. 2017년이여, 한 해 동안 당신을 만나 행복했소~~. 슬프고 고통이 있을지언정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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