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조차 없던 '일본해'...日 오만한 역사 기록
명칭조차 없던 '일본해'...日 오만한 역사 기록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2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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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문화황국사대관(歷代文化皇國史大觀)
역대문화황국사대관-외관

[제주일보] 몇 년 전 서울 출장길에 들린 한 헌책방에서 흥미로운 책을 한 권 발견했었다. 큼직한 판형(23.5×31㎝)에 두께가 7.5㎝나 되는 우람한 책이었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수 많은 사진과 도판을 수록한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책이고 우리나라 관련 내용도 많아서 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입수할 수 있었다. 좋은 자료를 구했구나 하는 기쁜 마음에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네와 관련된 많은 부분이 잘려나간 파본이라 아쉽지만 되돌려 주고 말았다.

한참 뒤에 일본의 고서점 두 곳에 똑 같은 책이 소장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모두 주문을 하려는 데 두 곳이 다 해외배송이 안 되는 책방이었다. 할 수 없이 일본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 친구 집으로 배송을 받았다가 다음 일본 출장길에 전해 받았다. 좀 쌀쌀했던 날씨에 커다란 책을 두 권씩이나 낑낑대고 들고 오던 그 친구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구한 책이 바로 '역대문화황국사대관(歷代文化皇國史大觀.九州日日新聞社.1935)'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정신의 고양과 민족의식 회복을 목적으로 당시 일본 화보(畵報)업계의 선구적인 인물이었던 오사와 요네죠(大澤米造)가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다. 그러한 목적 때문인지 이 책은 이 신문사에서만 출판된 것이 아니라 일본 각지의 다른 신문사에서도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입수했던 다른 한 권은 일본의 또 다른 지방 신문사에서 발간된 책이고, 필자가 처음 봤던 것은 경성에 있던 조선신문사(朝鮮新聞社)에서 1936년 출판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역대문화황국사대관 가등청정이 임진왜란 때 사용한 조선지도(도판) 부분

책의 내용은 진무(神武 일본 초대 천황으로 신화전설 상의 인물)의 건국부터 1868년(慶應 4)까지 전·후 3000년 간의 일본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정사(正史)뿐만 아니라 전설 상의 자료도 함께 수록해 일본혼(日本魂)의 고양에 중점을 두고 편집한 것으로, 책을 펼치면 왼쪽은 사진이나 도판을 배치하고 오른쪽은 그 내용을 해설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출판 목적이 뚜렸했던 만큼 수록된 내용을 보면 아전인수식의 역사해석이 곳곳에 보인다. 그 중에 한 예를 들면, 13~15세기에 걸쳐 우리나라 전역과 중국 동남해안을 침략해서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한 것으로 악명을 떨친 왜구를 '왜구의 활약(倭寇の活躍)(166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웃나라를 침략해서 사람을 죽이고 약탈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못할망정 ‘활약’했다고 보았으니 임진왜란은 '히데요시의 정한(秀吉の征韓)(214쪽)'일 수밖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우리에게 제일 관심 가는 자료는 '겐로꾸시대의 일본지도(元祿時代の日本地圖)(349쪽)'이다. 1690년(元祿 3) 프랑스에서 제작된 '일본열도의 지도(CARTE DES ISLES DU IAPON)'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일본해’ 대신 '동해(OCEAN ORIENTAL)'가.

그 밑에는 '조선해(MER DE COREER)'라고까지 표기되어 있다. 편집자의 말대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자체 지도가 제작되기 약 100년 전에 만들어진 17세기의 이 지도에는 ‘일본해’라는 명칭조차 없었던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질 것인가. 스스로를 찬양하고 고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에도 이토록 자명(自明)한 것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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