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의 소멸
제주어의 소멸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1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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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 / 제주어보전육성위원

[제주일보] 제주어의 소멸이 해가 갈수록 가파르다는 것을 느꼈다. 70대인 내가 하품은 표준어이고, 하우염은 제주어라고 애써 구분을 지어서 말했더니 50대인 젊은이가 현재는 하품이나 하우염을 두루 쓰므로 둘 다 제주어이므로 어디가서 하우염만 제주어라고 했다가는 욕먹는다고까지 충고하였다.

그러니까 지금 활달하게 쓰는 배추나 내 어린 시절에 썼던 송퀴나 다 제주어라는 것이고, 도마나 돔베나, 재채기나 헛갱이나, 안개나 으남이나 다 같은 제주어라는 거다. 더하여 왜 무를 삐라고 하는지, 꿩마농을 달래라고 하는지는 알면서도 구태어 구분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큰소리였다. 이러다가는 옥돔이나 참돔이 비슷한 돔이므로 그냥 쓰자고 할 것 같아 어처구니가 없다.

제주어 속담에 ‘항문이 더럽다고 도려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을 지금 젊은이들은 이렇게 표기해도 제주어라고 할 것 같아서 구태어 제주어 표기를 포기하고 올리지마는 해녀를 일제강점기에 생긴 말이라서 일본의 잔재라고까지 부정하는 제주도민도 더러 있어 답답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제 강점기 36년에 생긴 말이 어디 해녀뿐이겠는가? 은행銀行도 등대도 학교도 선생도 그때 생겼다고 유추할 수가 있다. 조선시대에 봉수대는 있어도 등대가 없는 탓이다. 서당과 훈장은 있어도 선생과 학교가 없었단 탓이다. 일제 강점기에 신학문이나 신식 물건이 생겼을 경우 사세부득이 썼던 단어를 새로 지어서 두루 써야만 제주도 애민정신이겠는가. 이미 제주어의 우수성과 독창성의 진면목을 윗대 어른들이 알았기에 구전되어 오던 제주 방언을 서울도 지방이라는 지역 활성화 정책에 따라 도에서 당당하게 지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줏말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제주도민들도 더러 있다. 제줏말이라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제주어는 표기하지 못하고 구전되어 왔기 때문에 글자가 없는 반쪽 짜리라고 할 때 제줏말인 거다. 그래서 제주도에선 스토리텔러를 말장시라고 한다.

제주 민요로 대표성을 띠는 소리가 오돌또기라고 하는데 활발한 사색에게 여쭈어 봐야 한다. 오돌또기는 육지 굴러들어온 변형 타령조 노래이므로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도 ‘서우제’ 소리를 제주대표 민요로 꼽는다. 상서로운 비가 내리기를 빌어서 정성을 모아 굿을 하고나서 신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부르는 서우제 소리의 후렴구의 애절한 가사와 리드미칼한 곡조를 음미해 보면 절로 알아질 일이다.

옥돔을 솔라니라고도 하고 오토미라고도 하는데 물고기 중에 생김새가 옥같이 곱다하여 오두미五頭未라도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 이마가 미끈하여 예술적이고 붉은 뺨에 번진 노랑버짐이 매력적이며, 깊고 그윽한 눈알 또한 인어의 눈매를 닮았다. 흔적만 남은 콧구멍의 조화와 또렷한 입술 선은 얼마나 명료한지 옥돔 한 마리를 오래 들여다보면 비늘 하나마다 용왕의 정성이 절로 보인다. 그 다섯 가지 별미가 옥돔의 어두일미라는 거다.

그리고 제주어의 어원을 이야기하면서 쓰기 좋다고 몽고말이 제주어로 굳어진 경우라든지, 14세기 고어라든지,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다든지 하는 말로 땜질하지 말자. 조선시대만 해도 제주도민 절반 이상이 노비신세였기에 보제기가 되어 건져낸 전복, 테우리가 되어 말을 진상하는 일로, 노 젓는 사역으로 감귤과 표고버섯 진상으로 글을 몰랐다. 더욱이 몽고지배가 백년이라고 해서 몽고 부호들이 제주도민을 살갑게 여겨서 술잔이라도 나누었다면 천만의 말씀일 거다. 그래서 몽고말이 말馬에 한정되었을 뿐 쓰임이 거의 없다.

제주도가 좁은 만큼 얕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어 내가 하는 말을 시시하다고 부정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지금처럼 각박한 세태에서 출세와 권위를 위해 전력 질주하는 시대가 가고나면 제주도 문화 창달을 위하여 제주도 정서와 정신이 깃든 제주어의 진면목을 자료로 구할 미래의 제주도민이 있을 것을 믿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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