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 특유의 집념으로 세계 여성바둑계 선두권 ‘질주’
제주여성 특유의 집념으로 세계 여성바둑계 선두권 ‘질주’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7.12.19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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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프로 바둑기사 오정아

장난감 대신 바둑돌, 첫 스승은 아버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바둑 유학’
2011년 ‘고수들의 전쟁터’ 프로 입문
“‘오정아표’ 스타일 완성 위해 더 노력
기회되면 제주 바둑계에 헌신하고 파”

 

가로 42cm, 세로 45cm. 각각 18칸으로 만들어진 바둑판은 인간 창의력의 상징이다. 4000년이 넘는 바둑 역사에 사람들은 인생을 빗대며 최고의 ‘수’를 놓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다. 세계 여성바둑계의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제주 출신 오정아 바둑 프로기사(24)는 “선택은 이미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고 바둑판에 돌을 놓는 순간 좋든 싫든 그 수를 최선의 선택, 최고의 가치로 만들기 위해 온힘을 다해 노력할 뿐”이라고 말한다.

 

“일곱살 즈음, 아버지 바둑 상대가 언니였는데 언니보다 제가 더 바둑을 좋아하게 된 거죠.”

한국 여성바둑계를 이끌고 있는 오정아 3단의 바둑입문기다. 또래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에서 1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난 오정아는 장난감 대신 바둑돌을 잡았다. 첫 바둑 스승은 아버지. 바둑 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산읍 풍천초등학교 3학년. 전교생이 100명도 안되는 작은 학교를 다니던 그녀에게 인생 첫 수인 장수영 사범과의 만남이 시작된다. 장수영 프로 9단은 1980년대 조훈현·서봉수와 함께 한국 바둑계의 대표 인물이다. 바둑 유학의 후원은 일찌감치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제주도바둑협회장을 지낸 김기형 경림산업 대표가 맡았다.

10살. 가족과 떨어져 지내기엔 어린 나이에 서울 마포구 장수영 바둑도장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오정아는 대부분의 바둑 입문생들이 그렇듯 오전 9시부터 늦은 밤까지 바둑판과 함께 청소년기를 같이했다. 욕심처럼 되지 않는 날엔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고 공부에 몰입했다. 목표는 오직 하나, 프로 바둑기사가 되는 것. 주변에선 독하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 여성 특유의 끈질긴 집념의 유전자를 오정아 역시 갖고 있었던 것.

“그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가족과 떨어져 바둑을 시작했는데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덕분에 성장의 원동력이 됐지만…. 요즘 그때 얘기를 꺼내면 엄마는 눈물을 흘려요.” 인터뷰 내내 해맑게 웃던 오정아의 눈에도 잠시 눈물이 맺혔다.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마음 수련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승패를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잖아요. 자신만의 컨트롤방법을 찾아가는 거죠. 바둑판 앞에 앉았을 때는 이미 시작이 된 것이고 돌을 잡는 순간 선택은 이미 물러설 수 없단 뜻이죠. 그리고 바둑판에 돌을 놓는 순간 ‘아차’하는 후회가 되기도 하고, ‘잘했어’라는 판단이 매순간 찾아와요. 내 선택이 좋든 싫든 내가 던진 수를 최선의 선택, 최고의 가치로 만들기 위해 온힘을 다해 노력하는 거, 그게 바둑이라고 생각해요.”

단단하게 다져진 오정아의 바둑철학이다.

지독한 공부에 공부를 거친 그녀의 바둑인생은 뜻밖의 난관을 겪기도 했다. 누구보다 열심이었기에 프로 입단 역시 더 빠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실전에서 반집 차이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불운은 계속 이어졌다.

“예상보다 늦게 입단이 됐어요. 대담하게 경기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아, 여기서 떨어지면 안 되는데’,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승리로 보답해야 하는데’ 하는 잡념들이 생기더라고요. 부담이 됐던 거죠.”

10년간 계속해온 ‘바둑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갈등도 이어졌다. 난관은 ‘제주 여성다운 집념’으로 헤쳐나갔다. 결국 7전 8기. 2011년 여자연구생리그전에서 내신 1위 성적으로 프로 입문을 확정지었다. 그녀의 두 번째 수가 들어맞은 것. 이후 고수들의 전쟁터에서도 그녀의 한 수 한 수는 성장세를 이어갔고 바둑계의 조명도 바짝 다가왔다. 잘 웃는 ‘얼짱’ 프로 바둑기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중요한 건 바둑 내용이죠. ‘오정아표’ 바둑 스타일이 아닌 외모를 얘기하는 건 아직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 같아요. 철저히 실력 위주로 평가받는 게 바둑이고, 더 보여줘야 할 게 많은 프로기사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중국의 루이나이웨이(芮乃偉) 이야기를 꺼냈다. 2000년 당대 최고의 조훈현을 꺾었던 전무후무한 여성이다. 여성 기사가 남성을 이겨 우승하는, 세계바둑사에 충격을 줬던 일대사건의 주인공이다. 당시 루이나이웨이의 나이는 37살이었다.

“요즘 정말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후배들 기세가 놀랍고 무섭기도 해요. 여자기사로는 국내 최고인 최정 기사(21)는 바둑 선배이기도 하지만 저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판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고 부럽기도 해요. 한국 여성바둑계의 거침없는 성장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중국의 루이는 전설적인 인물이죠. ‘바둑을 위해 태어난’ 뼛속까지 바둑인들이죠. 둘 다 저에겐 많은 자극이 되는 인물입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오정아는 지난해 지구촌을 흔들었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격전’ 이야기를 꺼냈다.

“스마트폰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바둑은 늘 생각하게 만들어줘요. 인공지능(AI)이 할 수 없는 것들이죠. 사람의 바둑은 서로의 눈빛, 기의 흐름, 감정이 모두 녹아나면서 매번 판이 달라져요. 바둑을 인공지능이 점령하느냐, 아니면 인간의 새로운 창의력으로 영역을 더욱 확대할 것이냐는 논란, 논쟁이 이어지지만 저는 사람의 바둑을 믿어요.”

오정아의 세 번째 수는 현재진행형이다.

20대 중반. 여성기사들이 일찍 무대를 떠나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나이다. 여자 랭킹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여성 프로 기사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는 각오도 전한다.

“제주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꼭 참여하기 위해 노력해요. 현장에서 보내주시는 응원, 그것이 가장 든든한 후원이거든요. 그 에너지를 받고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있고 꼭 좋은 결과로 보답하고 싶어요. 대기만성형 선수도 많잖아요. 그리고 그런 실력을 갖추고 기회가 된다면 제주 바둑계를 위해 헌신하고 싶어요.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정아 인생의 세 번째 수가 기대된다.

 

오정아 3단은…1993년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에서 1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풍천초 3학년 때 서울로 바둑 유학을 떠나 장수영 바둑도장에서 바둑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다. 2011년 프로에 입단. 2013년 제4회 인천 실내무도 아시아경기대회 바둑 혼성 페어 동메달과 여자 단체전 은메달, 제3회 SG배 페어바둑최강전 우승, 2014년 제8기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 우승, 2014년 국수산맥 국제페어바둑대회 공동우승, 2016년 제21기 BnBK배 프로여류국수전 준우승. 2017년 제8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 한국 대표.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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