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인 그 섬에 가고 싶다
함께인 그 섬에 가고 싶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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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이사/논설위원

[제주일보] 타원형의 그 섬은 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졌다. 그래서 섬은 온전히 하나의 산이다. 산은 높되 가파르지 않다.

동서로 길게 늘어선 산등성을 따라 섬이 모습을 갖추었고 육지는 북쪽에 있어서 섬으로 오는 사람들은 팔 벌린 넉넉한 산을 보았다. 산의 남쪽은 바다와 가까워 절박했다. 물들이 수직으로 떨어지고 바다는 절벽 아래에 있다.

산의 북면은 넓게 퍼져 바다와의 사이에 비교적 완만하고 평평한 들녘을 만들었다. 걸어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바다가 있다.

산의 가운데에는 굳건하면서 온화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서 보는 산의 얼굴과 북쪽에서 보는 얼굴, 그리고 동과 서쪽에서 보이는 얼굴이 달랐다. 산의 얼굴은 조금씩 달리 보였으나 하나의 산이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처럼 같았다.

화산으로 만들어진 섬은 물이 땅 밑으로 흘렀고 바다 가까이에서 솟았다. 물이 솟는 용천수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물이 흐르지 않고 진흙이 없으니 논을 만들 수 없었고 쌀은 육지에서 들여와야 겨우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바다로 가거나 손바닥만 한 밭에 기대어 삶을 지탱했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기 위해 산이 생길 때 함께 만들어진 무수한 돌들을 골라내야 했다. 골라낸 돌로 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경계를 표시했다.

구불구불 늘어선 돌담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험난한 세월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넘어질 듯 위태롭지만 결코 제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을 쌓아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돌담을 쌓은 것은 내 소유물을 지키기 위한 폐쇄가 아니었다.

그들은 대문을 만들지 않았다. 개방과 협력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나와 남을 구분하는 데 엄격하지 않았다. 함께 집을 지었고 길을 닦았으며, 함께 바다로 나가 먹을 걸 구했다. 공동으로 목장을 만들어 소와 말을 길렀고, 동네 개울에서 함께 목욕하고 먹을 물을 길었다.

새라고 부르는 띠를 엮어 바람에 초가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을 때도 그들은 함께 했다. 좁은 올레를 따라 띠를 엮을 때 아이들은 함께 뛰놀며 노래를 불렀다.

마을의 안녕을 구하는 제사를 함께 올렸으며, 길사와 흉사를 함께 치렀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들은 함께 이겨냈다.

숨찬 해녀들의 외줄기 숨비소리도 함께여서 외롭지 않았다.

그네들은 함께 물에 들어갔고 함께 나왔으며 함께 나누었다. 아파서 육지 큰 병원으로 가야 할 때면 옆 집 이웃에게 아이들을 보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웃은 걱정 말고 다녀오라 말하고 제 자식처럼 밥을 해 먹여가며 보살폈다. 섬의 사람들은 늘 이웃과 함께였다.

언제부턴가 이 섬에 안이 보이지 않는 높은 담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쇠로 만든 대문을 만들고 안에서 닫아 걸기 시작했다. 자기 걸 지키기 위해 남을 헐뜯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더 많이 가지겠다고 다투는 사람들은 담장을 더 높이 쌓고 있다.

혹시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에 등장하는 이 구절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염려된다.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살만해진 바로 그 점 때문에 담장이 높아지고 혼자 사는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라면 더 이상 살만 한 세상이 아니다.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계절이다. 혼자 어렵게 혹독한 추위를 넘겨야 하는 이웃을 생각하는 섬사람들이 그립다. 이 섬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함께여서 아름다운 그 섬에 가고 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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