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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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미국 앨라배마대학교 커뮤니케이션정보대 부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나는 섬소년이었다.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이순(耳順)으로 가는 사이. 공자가 깨우친 하늘의 뜻은커녕 여태 내 속을 모르겠고, 들으면 이해할 성싶더니 세 발치 빗겨가 오해한다. 쉬이 토라지고 오래 간다. 지혜는 나이에 절로 따라 붙는 파파라치가 아닌 게다.

‘지혜실조’에 걸려 영혼이 궁핍하다. 내면에 존재하는 좋은 ‘나’와 나쁜 ‘나’ 사이 널뛰기가 헤아릴 수 없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가끔씩 “나는 누구인가?(Who am I?)”를 묻는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수필 형식으로 쓰는 과제다. 다수는 답한다. 모처럼 자신을 진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 문자 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누군가와 늘 소통해야 하는 장치에, 강박감에 매몰돼 정작 자기 내면과의 대화는 빈약하다는 반증이기도 싶다.

이번 가을학기 내 과목을 수강하는 제니퍼(가명)가 엊그제 보내온 ‘나는 누구인가’를 읽었다. 첫 시험을 망쳐 전전긍긍하던 제니퍼의 모습이 겹쳐졌다. 자신의 아픈 속내를 여과없이 솔직하게 들려주는 ‘제니퍼’를 읽으면서 그 시험의 아픈 점수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제니퍼는 이제 4학년 마지막 학기, 12월이면 졸업이다. 장차 꿈은 스포츠 매니지먼트 관련 일을 하는 것이다.

아빠는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으며 대학 풋볼선수였던 오빠는 지금은 프로 농구팀인 엘에이 레이커스(LA Lakers) 구단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가족력이라고 덧붙이며…. 미래 설계는 또렷하지만 제니퍼는 우선 보듬어야 할 내면의 상처가 있었다. 지독한 심리 불안과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정신적 아픔에 정상적으로 대학 생활을 하기 힘들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대부분 단절됐다고 고백하고 있다.

앨라배마대학교 학생 심리 상담센터에 근무하는 지인은 불면과 우울증에 시달려 상담하는 대학생들이 매해 급증한다고 전한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남부대학에 국한된 것만 아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Penn State University)의 정신건강센터에서 2016년 미국 내 139개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는 미국 대학생의 약 26%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약 33%는 자살을 고려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UCLA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약 12%가 흔히 우울증 증세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제니퍼가 심리적 아픔을 인지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자아통찰 과정에서 비롯된 의지는 견고한 에너지다. 제니퍼에게 답장을 쓰고 있다. 상처의 연유를 묻지 않는다. 자아에 도취한 나르시스 얘기를 꺼내 들었다.

심리학에서는 나르시시즘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외향적이고 권위적이며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부류와 상처받기 쉽고 무기력하며 걱정이 앞서는 유형이다. 자존감의 과잉과 결핍 차이다. 제니퍼의 아픔은 넘쳐서라기보다는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남에게 비추어지는 나에서 벗어나 자신을 세상에 비추라고 다독인다. 소셜 미디어에도 시시콜콜 너의 하루를 드러내고 즐겨 보라고 권한다. 나에게도 토닥거리는 독백이기도 하다. 보충 과제로 추가 점수를 받아 수업 통과는 걱정 없을 거라는 안심을 덧붙였다.

송구영신으로 부산한 12월이다. 사람의 이치로는 ‘멈추면 비로소 뭔가 보인다’ 하지만 자연과 우주의 이치로는 멈추는 순간 재앙이다. 한순간 멈춤 없이 억겁을 돌아 다시 365일을 탈 없이 돌고(자전) 돌아(공전)준 행성 지구가 경외롭다. 친구들과 소주 한 잔 부딪치며 불콰한 송년 모임 마련조차 어려운 미국살이 모양새지만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에게 묻기는 쉽다. “나는 누구인가?” 산중에서 가부좌 틀고 얻는 명상의 깊이는 아니어도 가끔씩 물어보면 내면은 화답할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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