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해변 산책로 접어드니 한담까지 하얀 물보라 '절경'
곽지해변 산책로 접어드니 한담까지 하얀 물보라 '절경'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1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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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제15-B코스(한림~고내올레)-해변산책로~고내포구(5.3㎞)
곽지8경 중 ‘치소기암’ 앞길.

[제주일보] # 곽지해변 산책로

곽지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산책로로 접어든다. 물속 바위가 많아서 그런지 한담동까지 온통 하얀 물보라다. 과오름에서 흘러온 용암이 바닷물을 만나 전국적으로 이름난 절경을 만들었다. 그런 아름다움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사람만 다니는 길을 내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친구가 볼멘소리를 할까? 한담동에서 시작됐을 뿐, 길 대부분이 곽지 해안인데, 왜 ‘한담해변산책로’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이다.

젊은 시절 작살을 들고 이곳 ‘모물’ 바다에 들면 ‘가린 돌’ 가기 전에 고기가 꿰미에 가득해, 끌다시피 들고 돌아오던 길이다. 이제는 모래가 메워져 얕아졌지만 선친께서 물려준 ‘우럭고망’도 있다. 곽지8경의 ‘쌍암종립’과 ‘치소기암’ 두 경치가 예 자리할 정도니, 알만하지 않는가?

‘쌍암종립(雙岩縱立)’은 속칭 ‘가린 돌’의 경치를 말하는데, 큰 암석이 둘로 나뉘며 높게 솟아 절경을 이룬 것이고, ‘치소기암(鴟巢奇岩)’은 ‘한 마리 솔개가 하늘을 향해 힘찬 나래짓을 하는 모습’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 바위들과 인사를 나누며, 파도가 서너 번 신발을 어루만지는 걸 허용하고서야 한담동에 이르렀다.

 

장한철 선생 표해기적비.

# 한담동, 장한철 표해기적비

한담동은 애월리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동네로, ‘표해록(漂海錄)’을 쓴 장한철(張漢喆) 선생의 출신지다. 표해록은 장한철이 1770년에 과거 보러 가기 위해 배를 탔다가 폭풍으로 오키나와까지 표류해 이듬해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을 쓴 기록으로 도지정문화재다.

장한철은 인동이 본관인데, 영조 51년 별시 병과 27인으로 급제해 승정원 주서, 성균관 전적, 이조낭청, 평시서 주부를 역임했으며, 외직으로는 강원도 상운찰방, 강원도 흡곡현령, 제주 대정현감 등을 지냈다. 2011년 일주도로변 한담공원에 ‘장한철 선생 표해기적비’가 세워졌다.

본래 한담 해안에서 애월항까지의 올레길은 지금 양식장 철거공사로 우회하도록 돼 있는데, 그 때문에 애월연대(涯月煙臺)를 거친다. 애월진에 소속돼 있었던 이 연대는 시도기념물 23-17호로 지정돼 있는데, 별장 6명과 봉군 12명이 배치돼 동쪽으로 남두연대, 서쪽으로 귀덕연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애월하물.

# 애월리의 근간을 이뤘던 ‘하물’

애월리의 중심에 있는 하물은 1987년 한국자연보호협회와 경향신문사가 공동으로 조사 선정한 ‘한국 명수 100곳’ 중의 한 곳으로 지정될 정도로 좋은 용천수였다. 마을 출신들은 이 물을 자랑으로 여겨, 밖으로 나가면 발가벗고 추억을 쌓았던 고향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일대에 공원을 만들고 번듯한 시설을 해놓았으나, 수량이 줄고 겨울이어서인지 쓰레기가 몰려있다. 이곳 출신 시인 김종호의 시에 그 사연이 들어있다.

 

‘푸르던 날에 빵빵한 젖을 물고/ 왁자하던 삶 깃발처럼 펄럭일 때/ 천길 돌 속 얼음이면 그리 청량할까/ 부러 찾는 이마다 쉬 떠나지 못하였다// 문명에 눈이 멀면/ 사랑도 벗어버리는 옷인가/ 이제는 잃어버린 이름/ 시름시름 고려장된 어머니// 이따금 휘둘러가는 바람/ 빈 과자봉지만 부스럭거리고/ 나그네의 은빛 머리에/ 가을볕이 글썽일 때/ 사랑도 믿을 수 없어/ 쫄쫄쫄쫄/ 여윈 울음으로 흐르는가’

-김종호 시 ‘하물 1’ 부분

애월진성 일부.

# 애월진성과 애월조점

하물을 나와 골목길로 애월초등학교 정문을 통과하는데, 심상치 않은 돌담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애월진성(涯月鎭城)의 자취다. 남쪽 부분은 학교 건물과 민가가 바짝 들어서 그 모습을 살피기 어려우나, 북쪽 밖으로는 원형이 그대로 남아 담쟁이, 계요등, 댕댕이덩굴이 성담을 덮고 있다.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 ‘애월성은 애월포구에 있으며 돌로 쌓았는데, 주위가 549척, 높이가 8척이고, 남쪽과 서쪽에 성문이 있다’ 그리고, 방호소(防護所)로서의 애월소에는 ‘성안에 객사와 군기고가 있다’고 적었고, 수전소(水戰所)로서 애월포에는 ‘판옥전선이 1척, 비상양곡이 3석, 격군 118명, 사포 21명이 있다’고 했다.

‘탐라순력도’의 ‘애월조점(涯月操點)’은 이형상 목사가 이곳 애월진성의 군기를 점검한 그림으로, 1702년 11월 14일에 명월진성에서 출발한 이형상 목사 일행이 애월진에 도착해 순력의 마지막 밤을 보낸 뒤, 이튿날 성정군 245명과 진성의 군기(軍器)와 집물(什物), 목자와 보인 181명, 말 1400필을 점검한 그림이다.

 

# 애월항 방파제 옆을 지나며

고내리로 가기 위해 성터를 지나 해안도로로 나오다가 길 바로 옆에 서 있는 도댓불을 만났다. 옛날의 자리였는지는 몰라도 항구를 확장하면서 높인 방파제 때문에 더욱 초라해 보인다. 지금도 계속 건설 중인 축항 옆을 지나는 걸음은 어지럽기까지 하다.

애월항은 1995년 말 연안항으로 지정돼 서부지역 연안화물을 처리하기 위해 개발을 추진하다 사업 타당성 부족으로 난항을 겪었는데, 지역 주민들이 LNG 인수기지를 유치하게 되면서 정부로부터 타당성을 확보해 항만개발 예산투자가 이뤄진 곳이다.

가스공사는 2019년 8월까지 약 3500억원을 투입해 애월항 일대 7만4786㎡ 부지에 천연가스 저장탱크 2기 등 각종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이곳 애월항과 목포 용당항을 잇는 항로에 3569t짜리 로로선 ㈜금영의 레드포스호가 취항해 1일 1회 왕복하면서 제주 남․서부권역의 농․수․축산물을 가까운 애월항에서 육지로 실어 나름으로써 물류비용 절감과 교통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시설 현장으로 어수선한 길을 걸어 나가니 어느덧 고내포구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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