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
'적폐 청산'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11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명철.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논설위원

[제주일보] 2017년 한 해도 어김없이 저물어간다. 숨가쁜 시간들이었다. 지난 해 타오르기 시작한 촛불의 열정은 결코 가냘프거나 쉽게 사그라들지 않은 채 광폭한 어둠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는 시대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이것은 더 이상 낡고 퇴락한 한국사회가 지속되어서 안 된다는 민주적 시민의 준엄한 정치적 윤리의식에 바탕을 둔다.

그동안 한국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인, 말 그대로 적폐가 얼마나 두껍게 퇴적층을 이뤘는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적폐가 뉴스의 초점으로 부각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에 깊숙이 개입된 국정원의 댓글공작, 국정원의 특별활동비 명목으로 청와대에 상납한 각종 비리 행위, 집권 세력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작성된 문화계와 과학계 블랙리스트 등, 어디 이것뿐인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관련하여 여전히 석연치 않게 꼬리를 무는 BBK 혐의, 이와 관련하여 세간의 유행어로 퍼져 있는 “다스는 누구의 것입니까?”와 같은 풍자적 질문에 담겨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의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 무분별한 투자로 천문학적 혈세를 낭비한 자원외교의 문제점 등 한국사회 최고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각종 부정부패의 혐의와 의혹을 지켜보는 여론은 ‘적폐 청산’을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2017년은 한국사회의 새롭고 정상적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신열(身熱)을 앓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신열은 한국사회가 근대성(modernity)을 제대로 추구하고 있지 못한 것과 매우 밀접하다. 중세의 봉건주의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외세에 휘둘리면서 강제적 및 타율적 근대를 경험한 우리의 역사는 정상보다 비정상을, 공정함보다 불공정함을, 원칙보다 변칙을, 약자보다 강자를, 그리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를 만연시켰다. 여기에는 근대전환기를 민족의 주체적 역량으로 적극 대비하지 못함으로써 서세동점(西勢東漸)하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팽창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침탈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를 간과할 수 없다. 말하자면, 급변하는 시대를 예각적으로 읽고 그것의 핵심을 통찰하는 과정 속에서 주체적으로 근대를 이해하고 해석하여 이것에 적극 대응하는 삶을 창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제의 식민주의에 의해 왜곡된 근대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라는 미명 아래 근대의 병폐를 우리 사회 곳곳에 퍼뜨렸다. 제국의 지배자인 일본은 스스로 근대의 문명국이므로 전근대 단계에 머무른 조선을 식민통치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고, 이 과정에서 일본은 문명의 탈을 쓴 온갖 야만의 행태를 ‘식민지 근대’로서 미화하지 않았던가. 일본군 위안부와 태평양전쟁에 동원되고 징집된 노동자는 그 단적인 사례다.

여기서, 한국사회의 비정상적 근대의 또 다른 요인으로 쉽게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해방 이후 새로운 식민주의로 나타난 미군정이고,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미친 미국의 존재다. 특히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냉전체제 아래 팍스아메리카니즘을 주도면밀히 한국사회에 뿌리내리는 가운데 한국사회는 미국식 근대를 삶의 모델로 간주하면서 이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소홀히 여겨왔다. 무엇보다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의 효율성과 실용성을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와 경제성장주의에 대한 맹목은 근대의 속도지상주의 병폐와 맞물리면서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점을 낳지 않았던가.

따라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은 지난 정권의 부정부패한 구조악(構造惡)과 행태악(行態惡)을 청산하는 데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파행적 근대를 정상화시키는 성찰의 계기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명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그것에 기반을 둔 정치적 윤리의식의 파탄, 그리고 삶의 참다운 행복에 대한 가치 붕괴, 이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적폐 청산’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