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집
화가의 집
  • 제주일보
  • 승인 2017.12.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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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

[제주일보] 화가가 이 집을 산 지는 5년남짓이지만 집의 나이는 이미 40을 넘어서고 있다. 낡은 집은 제주도의 전형적인 집형태로 안거리, 밖거리, 모커리가 자리하고 있다. 슬레이트지붕을 인 이 세채의 집에서 내게 흥미로운 곳은 밖거리이다.

원래는 외양간이었다는데 가운데쯤에 길다란 시멘트 욕조같은 게 붙박이로 가로놓여있다. 알고보니 예전의 여물통이다. 화가는 소가 먹이를 먹던 통 위에 낡은 문짝을 덮어놓고 탁자처럼 이용하기도 한다.

화가는 이 집을 접수하고도 집을 손보거나 고치지 않고 그냥 사용한다. 화장실도 바깥에 있는 채로, 샤워시설도, 난방시설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채로 산다. 물론 가족전체가 사는 살림집은 아니지만 종종 드나들며 머무는 데만도 아쉬운 게 많을 듯한데 화가는 예전 집주인이 느끼던 불편함도 값을 쳐서 사들였다는 듯이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지난 초여름 화가는 이 집에서 간단한 전시를 했다. 일상의 공간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그의 꿈이기도 했다. 전시작품들과 함께 밖거리의 벽에 화가가 붙여둔 흑백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명함보다 작은 흑백사진 속에는 할머니 한분의 얼굴이 어색하게 담겨있다. 누구냐고 했더니 놀랍게도 집의 원래 안주인이라고 한다. 집을 판 이가 급하게 처분했는지 그냥 버려두고 간 궤짝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진이란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흰머리수건을 쓴 사진 속 할머니의 사진은 이 집의 과거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패처럼 보인다.

화가는 전시를 핑계로 그동안 방치해두었던 모커리를 정리했다는데 그 한쪽 벽면에는 희한하게도 두 개의 큰 솥이 걸린 낮은 아궁이가 설치돼있다. 그 옆으로는 공중목욕탕 세면대같이 길고 넓은 타일개수대가 버티고 있다. 창고도 아닌 것이 부엌도 아닌 것이, 요즘 아파트에서 비슷한 것을 찾는다면 물부엌 같은 공간일 듯 한데, 그러기엔 아궁이가 생뚱맞았다.

화가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하’ 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이 바닷가마을은 원담이 예로부터 유명한 곳이다. 요즘에도 7월이면 원담축제가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원담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멜이다. 멜은 싱싱할 때 국을 끓여먹거나 조려먹거나 튀겨먹기도 하고 멜젖을 담아두기도 하지만 삶아서 말리면 값이 꽤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이 공간은 바로 멜을 삶던 곳이었다.

두평남짓한 모커리에서 바다가 보이는 마당으로 걸음을 옮겨보았다. 어느 늦은 봄날의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원담으로 멜이 밀려든 날 새벽 누군가가 “멜 들어수다”하고 외치면 지금은 작은 흑백사진으로만 남은 이 집의 안주인도 집앞의 원담으로 뛰어나갔을 것이다.

멜을 양동이에 담고 몇 번이나 모커리로 나르고나서는 멜을 삶는 작업을 하느라 아궁이 앞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이 지아비는 밖거리에서 소 여물을 먹였겠지.

지금은 소를 집에서 키우는 일도, 멜을 삶는 일도 사라져버렸다. 제주인의 일상을 간직한 집들도 잦은 수리와 동시에 그 흔적을 지워버렸다. 기억상실의 시대에 화가가 보존하고 싶은 것은 집의 형태가 아니라 이런 일상의 흔적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이 집은 사진 속 할머니의 삶, 바닷가 사람들의 삶, 그리고 제주의 작은 역사 한조각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화가는 울퉁불퉁한 벽면과 예전 개수대 위 등 본래의 쓰임은 잃었지만 엄연히 남아있는 일상의 공간에 작품을 전시했다. 이렇게 옛것, 소박한 것, 소소한 것에서 가치를 찾는 화가의 정서가 보태져서 평범한 제주의 집은 특별해졌다.

이 특별한 집에 오늘날을 살고있는 화가의 흔적은 미래에 어떻게 남겨질까. 역사의 공간에 자신의 흔적을 고스란히 포개고 있는 화가, 그의 이름은 홍진숙이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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