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다른 디자인 20년…글로벌 기업 수석 디자이너로 ‘맹활약’
色다른 디자인 20년…글로벌 기업 수석 디자이너로 ‘맹활약’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7.12.10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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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현승훈 디자이너
현승훈 수석디자이너

車업계서 디자이너 인생 스타트
검은색·흰색 일색이던 자동차에
자연 컬러 담으며 ‘색바람’ 선도
‘제주의 감성 디자인’에 큰 영향
느낌 전달하는 ‘담백함’이 철학

 

“중학교 미술반 시절,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이기도 했던 학교 옥상은 나의 가장 자유로운 놀이터였어요. 끝도 없이 펼쳐지는 제주의 파란 바다와 하늘을 한꺼번에 품을 수 있었거든요. 경계를 구분할 수 없었던 그 파란 빛깔을 똑같이 옮겨놓는다고 수없이 붓질을 해 댔는데, 매번 색이 다르게 나오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뚫어져라 하늘과 바다를 바라봤던 생각이 납니다.”
글로벌 기업이자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현승훈 수석디자이너(컬러·소재디자인)의 얘기다.

故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옛 제주사대부중·고. 당시 건물 옥상이 미술실이었다.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중업 선생(1922~1988)이 설계해 1964년 윤곽을 드러낸 제주시 용담동의 옛 제주대학교 본관은 제주사범대부설 중‧고등학교로 변신했다. 중학시절을 여기서 보내며 꿈을 키웠던 소년은 계단 대신 나선 모양의 미끄럼틀처럼 생긴 긴 통로를 따라 학교 건물 옥상에 있던 미술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총총거렸다.

당시 초대 국립 제주대의 총장이었던 문종철 선생의 의뢰로 탄생된 이 건축물은 학생들에겐 독특함 그 자체여서 ‘달팽이 건물’이란 별명도 얻었다. 디자인에 대한 남다른 식견이 있었던 문 총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 특별한 건축물을 거기서 보기는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소년은 그때까지도 김중업이 누구였는지, 왜 이런 우주선 같은 건물을 설계했는지 몰랐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존재를 알게 됐다고 했다. 훗날 대학생 시절 디자인공모전을 함께 하며 친해진 선배가 문종철 선생의 손자라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면서 그는 뒤늦게 ‘재밌는 인연’을 발견하기도 했다.

소년에게 우주선 같았던 이 특별한 학교 건물은 안타깝게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1995년 10월 철거됐다. 그 사이 소년은 ‘예술과 실용’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산업디자인학과 대학생이 되었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고(故) 이타미 준 건축가의 ‘돌·바람·물 미술관’.

바람에도 색깔을 입히고 싶었고 ‘햇볕과 늘상 걸어가는 길은 어떤 색으로 표현할까? 우리가 숨쉬는 공기에 색을 입힌다면 어떤 색일까? 어떤 질감일까?’ 그의 색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재능은 졸업 후에도 계속돼 국내 대표적인 현대자동차회사 디자인연구소의 컬러팀 입사로 이어졌다.

더욱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친 그는 20대 젊은 디자이너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온통 ‘검정색과 흰색이 점령한 자동차에 어떻게 색을 입힐까’하는 고민은 늘 함께였다.

“싼타페 1세대 컬러디자인을 담당하면서 제 직업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1990년대 말 유럽과는 달리 거무튀튀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차는 흰색 아니면 검정색 일색이었어요. 욕심이 났죠.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색깔이 다르고 산과 바다, 강과 들을 가까이서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색깔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자연의 컬러를 자동차에 입혀보고 싶었던 거죠.”

그렇게 그의 의지는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자동차색으로 오롯이 옮겨졌다. 갈대색과 노을색, 물빛색, 솔잎색 등 순우리말로 이름을 붙여 대중 앞에 2000년 첫 선을 보인 싼타페는 자동차업계에 엄청난 파격이었다. SUV차종 주소비층인 젊은층에게 ‘색(色)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차종의 특성과 조합이 잘 맞았습니다. 차량 판매량도 색깔 별로 고르게 유지됐고, 그러면서 제 전문 분야에 자긍심을 갖게 해 준 계기가 됐어요.”

그의 손을 거쳐간 자동차의 색깔도 수십 가지. 이후 르노삼성자동차 디자인센터 컬러&트림팀을 거쳐 현재의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 수석디자이너의 위치까지, 상품에 맞는 색깔을 찾아내고 만들어내기 위해 그의 눈은 감겨있는 법이 없었다. 디자이너로서 걸어온 지도 이제 20년을 넘어섰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일까?
“흔히 ‘심플하다’, ‘미니멀 하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담백한 디자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나치게 밋밋하지도,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그 정도’ 만큼이죠.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듯, 느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그런 영감을 준 건축물이 있어요.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건축가 고(故) 이타미 준 선생의 ‘돌‧바람‧물 미술관’이죠. 디자이너들이 늘 하는 고민이 형태와 컬러 같은 시각적인 부분에 집중되기 마련인데, 그 미술관을 보고는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자연의 감성에 제주라는 고향의 이미지가 합쳐져 전달된 거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대학시절 은사이신 이기후 교수님께서 그토록 제자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던 제주의 감성 디자인이란 걸 비로소 절감했습니다.”

사실 그의 집안내력을 보면 일찍부터 그는 ‘제주감성 디자인’이란 걸 접해온 셈이다. 제주 바다에서 떠내려온 산호는 담배파이프를 만드는 데 좋은 재료였고, 제주 들판에서 흔하디 흔한 정동(댕댕이덩굴)으로 만든 챙 넓은 모자는 에어컨이 없었던 시절, 그늘과 서늘함을 동시에 만족시켜 주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제주섬이 베풀어준 자연 소재로 제주감성 디자인을 한껏 뽐내시던 아버지는 그에게 좋은 디자이너 스승이기도 했다.

“디자인이란 게 어쩌면 사소함을 섬세하게 해석해 의미있는 가치로 만드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특히 제주의 여러 디자인 상품은 새로운 해석이나 색다른 경험탐구가 아닌 제주가 지녀왔던 순수감성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여져요.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지만 제주가 간직해 온 보편적 스토리들이 콘텐츠가 되고 그것이 유‧무형의 제품들로 이어지도록 고민한다면 더욱 새롭겠지요. 최근에 그런 시도들이 있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접하고 있어서 기대도 많습니다. 제주의 디자인 공방이나 편집숍 제품에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참신한 디자인들이 나오는 걸 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게 무리는 아니지요.” 

제주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그는 ‘열정을 이기는 건 없다’라고 확신했다.
“제가 공부했던 시절도 그랬지만, 제주는 디자인 불모지였죠. 그런 조건에서 후배들의 창의와 열정으로 제주만의 독특한 디자인문화가 정착돼가는 게 눈에 보여서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당장 눈앞에 성과나 성공으로 보장되지는 않지만, 훗날 우리들의 포트폴리오가 ‘더 나은 제주디자인 발전에 기여했다’는 증명이 되겠지요. 그리고 분명 제주디자인은 한 발자국씩 성장하는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현승훈 디자이너는…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1971년 출생. 제주북초와 제주사대부중, 제주제일고를 거쳐 제주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했다. 1997년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 컬러팀과 이후 르노삼성자동차 디자인센터 컬러&트림팀을 거쳐 현재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서 컬러·소재디자인 수석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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