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던 조선...日의 입장은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던 조선...日의 입장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2.0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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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계림사변(壬午鷄林事變)
임오계림사변(壬午鷄林事變·비매품·1932) 외관.

[제주일보] 지난 10월 말,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도쿄 간다고서축제(神田古本まつり,제58회 10월 27일~11월 5일)에 다녀 왔다. 한 대형항공사의 직항편은 필자에게는 부담이었기에 매번 서울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했었지만, 올 해에는 지난 9월 초부터 취항한 어느 저가항공사 덕분에 저렴하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그 동안 고서축제 출장기간에는 운이 좋게도 날씨가 궂은 적이 없었는 데, 첫 직항편을 이용한 이번에는 제22호 태풍 사올라(SAOLA)와 함께였다. 다른 사정으로 먼저 교토에서 이틀을 소비하고 온 지라 도쿄에서의 시간은 단 이틀 뿐인 일정이었으나 아쉽게도 하루를 온전히 날렸다.

다음 날 하루 뿐이었지만 ‘매년 특별한 뭔가를 만나는 고서축제다’라는 생각에 심기일전해서 온 종일 열심히 돌아다녔다. 역시나.... 축제 때마다 찾아가는 짐보쵸(神保町) 사거리 이와나미홀(岩波ホール) 앞 한 단골 노점 부스에서 눈길이 가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책등에 보이는 큰 제목은 '계림사변(鷄林事變)'이고, 그 위에 작은 글씨로 ‘임오(壬午)’라는 글자가 얼핏 보였다. 당연히 ‘계림’은 우리나라를 뜻할 것이지만 ‘사변’이라니....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서 책을 열어보니 속지에 ‘하나부사 타로(花房太郞)’ 명의의 증정 표찰이 붙어 있었다.

임오계림사변에 수록된 임오군란 당시 상황을 그린 일본작가의 일본공사관 난입 상황도.

우리네에게 ‘임오’와 ‘하나부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딱 하나다. 1882년 일본의 경제 침탈과 민씨 일파의 전횡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조선의 구식 군대 군인들이 일으킨 임오군란(壬午軍亂)과 당시 재조선 일본공사관 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이다.

하나부사 타로는 하나부사 공사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기일을 기념해서 임오군란시 일본측 생존자의 아들인 다케다 가츠죠(武田勝藏)에게 위촉해서 1929년 '메이지15년 조선사변과 하나부사공사(明治十五年朝鮮事變と花房公使)'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임오군란 50주년 기념으로 1932년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 소속된 ‘명치신문잡지문고(明治新聞雜誌文庫)’의 주임자인 미야다케 가이고츠(宮武外骨)에게 편찬을 위촉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의 편찬자 미야다케는 메이지(明治)시대의 신문과 잡지 4000여 종을 소장한 명치문고 창설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는 타로의 의뢰를 받아 1882년 7월 말~11월 쯤까지 일본에서 발간된 신문과 잡지를 조사해서 임오군란 관련 자료가 수록된 70종의 자료를 찾아냈고, 그 자료들과 관련자 집안에 소장된 다른 기록물들을 취합해서 편찬했다고 범례에 밝히고 있다.

1882년 발간된 일본 측 신문과 잡지에 수록된 자료를 모아 편찬된 이 책은 임오군란과 그로 인해 야기된 제물포조약·수호조규 속약(續約), 그 일련 과정에 대한 당시 일본측의 관점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자료하고 할 수 있다. 문자화된 자료 외에도 사진이나 만평(漫評), 영인된 문서 등 다양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가 보니 북핵 문제 등으로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리는 우리의 처지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음에 고구마를 서둘러 먹은 듯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언제 쯤이나....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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