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반창고
알록달록 반창고
  • 뉴제주일보
  • 승인 2016.01.19 2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단이 엄마가 상담실을 찾은 이유는 단이의 ‘손톱 물어뜯기’ 버릇 때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인 단이의 손가락은 온통 하얀 반창고로 감겨 있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틈이 날 때마다 손톱 주변의 작은 살점들을 뜯어내서 피가 나거나 짓무르게 돼 항상 손가락에는 하얀 반창고가 붙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단이는 다른 아이들에게 ‘반창고 소녀’라고 불렸다고 한다.

단이 엄마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단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단이 아빠의 일이 어려워지면서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아빠는 집에 와서도 늘 이곳 저곳에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하게 되고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옆에 있는 단이 엄마에게 화를 냈다고 했다. 서로 대화가 험해지면서 높은 목소리로 싸우고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던지고, 그러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갑자기 아빠가 문 밖으로 나가면 ‘왜 이야기를 하다 마느냐’며 엄마가 쫓아 나가고…. 아빠의 옷을 잡으면 아빠가 뿌리치며 엄마의 몸 어딘가를 치게 되고 엄마는 ‘왜 때리냐’며 다시 아빠를 때리고 그 소리를 듣고 이웃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나서 문득 정신이 들고 단이를 찾아보면 단이는 책상 밑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고 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그때부터 단이는 손톱을 물어 뜯기 시작하는 행동을 보였단다. 엄마가 단이에게 하지 말라고 달래도, 달래다 지쳐 화를 내어봐도 그만두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더 심해져 열 손가락 어디 한 군데 성한 데가 없다고 했다.

중학생이 돼도 그 행동이 없어지지 않자 보다 못해 상담실을 찾아왔다고 했다. 단이 아빠의 소식을 묻자 이혼을 하고 집을 나갔고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는 드문드문 단이를 만나러 오던 발걸음조차 사라졌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단이는 상담실에 찾아 왔다. 말이 없던 단이는 놀잇감이 많은 놀이실에 들어가 있고 싶어 했다.

소꿉놀이 세트에 들어있는 색색깔의 그릇을 꺼내 식탁 위에 놓아보기도 하고, 색깔 찰흙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며 향긋한 미소를 짓다가 나직하게 “부·드·럽·다” 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어디에 그 많은 말들이 숨어져 있었는지 단이는 말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가 싸우기 시작하면 단이는 무서워서 얼른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부드러웠던 엄마, 아빠의 목소리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큰 소리 물건이 내던져지는 소리, 경찰차 소리…. 그때 단이는 문득 손톱 옆에 솟아 올라온 작은 살을 발견하고는 이빨로 당겼더니 피가 솟으면서 아프다는 느낌이 들고 그때는 아빠, 엄마의 싸움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차라리 그게 더 좋았다고 했다. 혼자 그 무서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에게 상처를 내서라도 부모의 싸움소리 이전의 상태에 머물고 싶어하는 아이의 간절함…. 그 마음이 느껴지자 내게는 묵직한 통증이 다가왔다.

단이의 손톱 물어 뜯기 행동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단이 엄마에게 설명하고 단이 아빠에게 연락을 취해 단이와의 정기적인 만남을 갖도록 했다. 단이 엄마는 남편과 그렇게 싸우면서도 또 이혼을 하고나서도 단이를 한번도 떨어 뜨려본 적이 없었다.

그 강인함을 상담가와 함께 발견해냈다. 단이 아빠 역시 조금이라도 잘 살아볼려고 노력하다가 그 뜻이 세상과 잘 소통이 되지 않아 벌어진 경제적 어려움이란 것을 충분히 인정하도록 했다. 그 어려움 속에서 늘 잘해주지 못한 가족에게 죄책감이 있었다는 것도 발견해냈다.

어느새 단이의 손톱에는 하얀 반창고 대신 캐릭터 인형들이 새겨져 있는 알록달록한 밴드가 붙여졌다. 그리고 조금씩 아물어 붉은 새살이 돋기 시작한 손가락을 반창고 없이 보이며 배시시 웃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제주사랑 2016-01-20 10:14:44
매번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