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8기’ 제주인 투지로 그라운드 최전방에 다시 서다
‘7전8기’ 제주인 투지로 그라운드 최전방에 다시 서다
  • 변경혜 기자
  • 승인 2017.12.03 17: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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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AFC U-19 선수권 ‘득점왕’
한국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목’
교통사고 딛고 축구인생 후반전 돌입
“학창시절 백호기 가장 기억에 남아
전교생의 열띤 응원 받는 꿈의 무대”
지난 1일 충북 청주에서 만난 심영성이 축구 선수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목표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제주일보=변경혜기자] 포기란 없다.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심영성(30, 서울 이랜드FC)은 5번의 수술과 지독하게 고통스런 재활훈련을 이겨내 재기에 성공했다.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을 하며 차세대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로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던 그가 불운을 겪은 건 한순간이었다. 20대 혈기왕성한 그가 몇 번의 인생 롤러코스터를 타야했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에 돌입했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몸은 경기장에서 마음처럼 움직여주진 않는다. 다만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함께 만들어가는 축구를 하고 싶다”고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고난을 겪고 이겨내는 제주특유의 7전8기 투지를 심영성은 의연하게 발휘하고 있다.


시즌을 마무리하고 충북 청주의 집에서 아내와 두딸과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심영성을 만난 건 지난 1일.

“지난 시즌 많이 아쉽죠. 더 잘했어야 했는데….”

올 1월 서울이랜드FC로 옮긴 심영성은 자신의 성적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고 이후 자신에게 유독 엄격해진 그는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훈련에 더욱 매진해왔다. 2010년 1월 축구선수의 생명인 다리, 그것도 무릎뼈인 슬개골이 수십개로 산산조각 나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사실 교통사고가 났던 그 순간은 전혀 기억이 없어요. 의식을 찾고 운전석 차문이 열리지 않아서 조수석 문을 열고 겨우 차량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다리가 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고, 무릎을 보니 구멍이 뚫려 있는 거예요. ‘아 이제 더 이상 축구를 못할 수도 있구나’ 절망이란 걸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었죠. 첫 수술에서 의사선생님께 ‘축구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던 게 아직도 생생해요”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심영성이 5번의 수술과 5개월간의 입원을 거쳐 이를 악물며 지옥같은 재활훈련을 하는 사이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직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제 탓인 것만 같아요. 지병이 있으셨지만, 제 교통사고소식을 듣고 쓰러지셨거든요. 가장 든든한 팬이셨는데….”

심영성은 축구를 시작하게 되면서 제주서초등학교로 전학한 5학년말 즈음으로 기억했다. “제주시 외도동 도평초등학교에서 전학을 갔어요. 수업이 끝나고 매일 오후에 연습을 했는데, 어머니가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 담벼락 너머로 저를 보러 찾아오셨대요. 한번도 말씀을 안하셔서 몰랐어요.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전에 프로구단인 성남일화 입단을 결정했는데, 그때도 어머니는 저를 믿고 지켜봐주셨죠. 재활치료와 훈련을 거듭할 때, ‘축구가 아니면 안된다’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는데,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의 지독한 재활훈련은 주변의 예상을 완전히 깨뜨렸다. 박살난 무릎과 움직이는 건 발가락 정도, 선수생활은커녕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 것이란 주변의 예상이 무리는 아니었다.
“처음엔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도 다리가 욱신거렸어요. 전날까지 움직였던 부위가 뒷날 안움직이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 잡았지요. ‘그래 오늘 안되면 내일은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쉬지않고 했던 것 같아요. ‘축구를 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사고가 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됐지요”

2007년 7월 7일 FIFA U-20 월드컵 2007 D조 3차전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에서 강슛을 날리는 심영성 <연합뉴스>

2006년 19세이하(U-19)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5골을 몰아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던 심영성이었다. 2007년에는 캐나다 20세 이하(U-20) 청소년월드컵대표를 지냈다. 그때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의 경기는 아직도 회자될 정도다. 0-3으로 패색이 짙던 후반 29분 심영성의 마법같은 추격의 골은 결국 아쉽게 패배하긴 했지만 2-3까지 따라붙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과연 2006 AFC U-19 선수권대회 ‘득점왕 출신답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현재 한국축구를 책임지고 있는 이청용-기성용이 당시 함께 뛰었다.

K리그에서도 2007년 5골 1도움(25경기) 2008년 7골 3도움(23경기)을 기록,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등 박주영에 이은 대형 스트라이커 등장에 축구계가 흥분했다.
2011년 재활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뒤 2012년 11월 강원FC에서 대전과의 홈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자 심영성의 부활을 기다렸다는 듯 언론과 축구팬은 3년6개월만에, 1280일만에 골이라고 일제히 축하했다.

‘재기에 성공한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재기’ ‘성공’ 이런 말보다 성장을 위한 정말 큰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물론 정말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예전에는 당연히 주전이었고, ‘내가 골을 넣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기회가 왔을 때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배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축구가 소중해졌고요”

학창시절 심영성에 대해 묻자 백호기축구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고등학교 때 백호기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사실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죠. 백호기에서 우승해야 진짜 이겼다는 느낌이랄까, 사실 엄청난 거잖아요. 전교생이 정말 열심히 응원하니까, 선수로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이 정말 큽니다. 경기에서 지면 전교생이 애써 만든 응원을 더 이상 볼 기회가 없어지고 그 수고로움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만 같은 느낌이니까요. 다행히 제가 출전한 백호기는 다 우승했던 것 같아요”라고 추억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심영성은 “다시 축구를 하게 돼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체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며 “저와 함께 뛰었던 신영록 선수를 비롯해 재활훈련을 하는 많은 선수들이 희망을 갖고 하루빨리 회복해서 경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심영성은
2006년 AFC U-20 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아시아스타에 선정되는 등 일찌감치 한국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목을 받았다.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2001년  탐라기 전국중학교축구대회 최다득점상, 2003년 부산 MBC 전국고교축구대회 최다득점상을 수상했다. 제주서초등학교, 제주중학교, 제주제일고를 졸업, 성남일화로 프로무대에 진출한뒤 제주FC,  강원 FC, 포천 시민축구단을 거쳐 현재 서울 이랜드 소속이다.

변경혜 기자  b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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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 감귤학과 2017-12-03 17:12:01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인 제주인 심영성 선수, 응원합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