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전원생활을 누려보는 것은
텃밭에서 전원생활을 누려보는 것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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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제주일보] 현대인들은 너무도 바쁘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한 줌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작은 농장에서 자연과 함께 살고파하는 사람들의 로망은 누구나 갖는 꿈일 수도 있다. 맑은 공기와 몸에 좋은 음식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꿔온 것은 무엇보다도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밥상을 마주하는 작은 행복, 텃밭에서 방금 따온 오이와 상추 등 신선한 채소가 식탁에 오르는 전원생활의 풍경일 것이다.

필자도 시골에서 자랐다. 넓은 마당에 초가집 두 채, 두 칸이나 되는 외양간의 암소와 송아지가 마당을 내다보는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이다. 외양간을 돌아 들어가면 열 평 남짓한 우영팟에 상추와 배추가 싱그러웠다. 깊은 겨울이면 흰 눈 속에 파묻힌 배춧잎을 호호 불어가며 따오면 어머니는 구수한 된장국을 끓여 주었다. 간혹 국 사발에서 떠오르는 벌레는 몰래 집고 버려야 한다. 괜히 소리를 냈다가는 저녁상 분위기가 살벌했다.

다그락거리는 양푼이 소리에 아직도 고픈 배를 움켜주고 한 사발의 물을 들이켰던 기억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던 가족들의 애환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내가 사는 1층 아파트 정원에 텃밭을 만들었다. 작은 철쭉나무들을 단감나무가 있는 곳으로 옮기고 나자 양쪽에 조그만 텃밭이 생긴 것이다. 계절마다 식단에 오르는 채소들을 심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봄에는 상추와 알타리가, 여름에는 오이와 고추, 가지들이, 가을에는 적상추와 청상추가 내년 봄까지 자리를 잡고 자란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부루라는 채소가 상추라는 것도 텃밭을 만들고서 알았다.

지난 주말에는 텃밭에서 단감을 수확했다. 햇살이 아파트 건물에 가려지는 계절이라 가지들을 쳐 주지 않으면 감나무 아래 채소들이 자랄 수가 없다. 햇볕이 잘 들도록 가지를 치고 따낸 뭉실한 감들은 두 개의 상자에 가득했다. 출가한 딸과 아들, 사돈댁에 보낼 생각으로 마음이 흐뭇하다.

휑한 나뭇가지에 드문드문 달려있는 감들은 내가 먹을 양식이 아니다. 우듬지에 것들은 방문하는 텃새들의 먹이로 남겨두었다. 넓은 마당을 꽃과 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정원으로 꾸미는 것도 좋지만, 요즘은 자투리땅을 이용하여 텃밭으로 가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 자체로 훌륭한 정원이 될 뿐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가꾸고 기르는 보람도 얻을 수 있다. 무공해 채소로 가족들의 건강을 돌본다는 생각에 이르면 누구나 꼭 한 번 지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넓은 농장이 아니더라도 좋다. 자그마한 텃밭이 아니더라도 좋다. 도시의 좁은 공간인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꿈을 꾸는 전원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소소물리에 직업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채소 소믈리에는 채소 자체의 맛과 영양, 레시피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직업으로 한국에선 아직 시작단계에 있다고 한다.

가족에게 신선한 무공해 채소를 먹이고 싶은 것은 모든 주부의 소망, 직접 키운 무공해 채소는 건강에도 좋고 흙을 가까이 할 수 있어 아이들의 감수성 발달에도 좋다. 인공지능이 발달되고 사람들의 정서가 메말라가는 오늘날 새로운 직업으로 유망하지 않을까.

사회의 도시화는 편리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주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 오는 고독감은 가족의 해체로까지 갈 수 있는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 도시에서의 조그마한 텃밭의 전원생활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이 식단으로 연결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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