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메밀칼국수
꿩메밀칼국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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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오. 제주문화원장/수필가

[제주일보] 예전 제주 사람들은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을 슬기롭게 이용하면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이용한 소박한 상차림을 즐겼다. 여름이면 집 울 안에 있는 ‘우영밧’(텃밭)에서 뜯어온 배추나 상추 등의 쌈 거리에 자리젓, ‘멜젓(멸치젓)’ 등을 즐겼고, 막 된장을 물에 풀고 오이 등을 채썰어 넣어 먹는 오이된장국, 된장을 풀고 미역을 넣어 끓이는 미역된장국, 갈치에 호박과 얼갈이배추를 넣어 끓인 갈치국, 밥이나 국을 하다 남은 잉걸불에 구운 갈치구이와 고등어구이 등…. 요즘으로 치면 건강을 위한 웰빙 음식이겠지만 당시에는 섬사람들의 평범한 상차림에 오르는 음식이었다. 이처럼 사면이 바다인 섬이다 보니 제주의 상차림은 야채와 함께 해산물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서는 가을에 수확한 메밀로 짤막한 면을 뽑고 거기에 뼈째 토막낸 꿩고기를 넣어 만든 꿩메밀칼국수를 별미로 먹었다. 바람이 불고 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호’, ‘호’ 하고 김을 불며 후루룩 먹는 그 맛은 요즘 사람들이 즐기는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이나 국수의 맛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메밀은 본래 점성이 적어 면을 뽑기가 쉽지 않다. 꿩메밀칼국수의 면발을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제주도의 ‘고기국수’의 면발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젓가락질에도 면이 툭툭 끊기다보니 어느 정도 먹다가는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메밀의 구수함과 꿩고기 특유의 감칠맛, 거기에 채로 썰어 놓은 무의 시원함이 조화를 이뤄 제주의 꿩메밀칼국수는 바지락을 넣고 끓인 칼국수의 시원함보다 훨씬 더한 상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참기름의 고소함이 더해지면서 감칠맛의 풍미가 더해지는데, 사실 같은 꿩메밀칼국수라도 어디나 같은 맛을 내지는 않는다. 육수를 어떻게 고아내느냐가 그 맛을 좌우하는데, 여기에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육수는 꿩을 통째로 삶아 고기를 건져 낸 후 살은 발려 메밀국수의 고명으로 사용하고, 그 뼈를 다시 고기 삶은 물에 넣고 소금·생강·대파를 추가한 뒤 은근한 불로 네댓 시간 더 우려내야만 맛의 비결인 꿩메밀칼국수의 육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가스불이 있어 쉽게 조리할 수 있지만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떼어 조리하던 시절은 어떠했겠는가?

여하튼 이러한 정성으로 만들어진 제주도 겨울별미 중의 별미인 꿩메밀칼국수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메밀의 칼칼한 미감에 꺼릴 수도 있지만 메밀의 은은한 구수함과 진하게 우려낸 육수의 시원함 때문에 한 번 두 번 이어지던 젓가락질은 숟가락으로 바뀌어 잘록한 면발과 국물까지 다 비우게 한다.

<꿩사냥 이야기>

지금은 매년 11월에서 2월까지만 꿩사냥이 허용되지만, 예전 제주도에서는 계절에 관계없이 꿩을 많이 사냥하였는데 음력 8월 초에 가장 성행하였다. 이를 ‘꿩사눙’이라 불렀다. 꿩의 새끼가 이맘때가 되면 먹기 좋게 자랐고 또 추석의 제찬(祭粲)으로 필요하고, 여름이 지난 젖먹이 어린이들의 영양보충 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다.

사냥을 가고 싶으면 어느 누구라도 동네 높은 곳에 서서 ‘욱, 욱!’하고 큰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욱인다’고 한다. 사냥하고 싶은 사람은 욱이는 소리를 듣고 모두 모인다. 거기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 패장(牌將)을 뽑으면 패장이 꿩을 날릴 사람(步軍), 망을 볼 사람(望軍), 잡을 사람(捕軍)과 사냥장소를 정한다.

사냥 장소에 인원이 배치되면 우선 꿩을 날릴 사람이 사냥개를 데리고 여기저기 산야를 누비며 꿩을 날린다. 한 번 날아가 앉은 곳을 망을 보는 사람이 지적하면 날리는 사람은 그 꿩을 또 날린다. 이렇게 하여 세 번 정도 날았다 앉으면 더 날지 못하여 숨게 된다. 이때에 개는 냄새를 맡아 숨어 있는 꿩을 찾아내고는 물어낸다. 사냥이 끝나면 모두 모여 크기를 나눈다. 이를 ‘분육’(分肉)이라 한다. 이때는 규율이 엄격하여 패장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게 상례다. 용어가 색다르다. 너 앞으로 꿩이 날아간다는 말을 ‘느 아방 간다’, 너 뒤로 날아간다는 ‘느 어멍 간다’라 한다. 또 꿩이 한 번 날았다 앉는 횟수를, ‘한 발탕, 두 발탕’으로 셈하기도 한다.

꿩의 종류로는 ‘조치’, ‘웅치’, ‘웅줄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고기를 나눌 때도 일정한 격식이 있다. 여러 마리를 못 잡고 한 마리만 잡았을 경우에는 부위 별로 각을 떼어내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큰 것을 차례로 드린다. 또 꿩을 물어온 개에게는 물어온 꿩의 창자인 ‘멀턱’을 주기도 한다. 남의 장사를 모시고 갔다가 꿩을 사냥했을 경우에는 나누어 갖지 않고 상가에 제수용으로 드린다. 상가에 드리지 않고 사취하였을 경우에는 공론에 부쳐서 벌을 받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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