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댕기(Yellow Ribbon)
노랑 댕기(Yellow Ribbon)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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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 / 전 중등교장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월간영어잡지(Reader's Digest)에 실렸던 ‘집으로 가는 길(Going Home)'의 간추림.

뉴욕의 어느 여대생들 예닐곱이 방학을 이용한 나들이를 가는 버스 안, 뉴욕에서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들떠있었다. 마치 해질 무렵 둥지나무에 모인 참새들처럼 재잘대고 있었다.

뉴욕에서 마이애미까지는 27시간 정도의 먼 길, 긴 여행시간은 버스 안의 승객들끼리 낯선 거리감을 서서히 좁혀준다. 그 버스에는 중년 나이의 아저씨도 타고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가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고, 외려 점점 굳어져가는 분위기였다.

쾌활한 성격의 한 여학생이 그 아저씨 옆으로 가 앉았다. 어디에 사시느냐, 무엇을 하느냐, 지금 가시는 곳은 어디냐는 등 어리광 살짝 붙여가며 물어댔다. 결국 그 남자는 속엣 말을 털어놓게 되었다.

자신은 지금 만기 출옥하여 귀가 중이다. 3년 반 전에 아내에게 편지를 썼었다. 얼마간 뵐 수도 없겠고, 연락도 닿지 못하는 곳에 가 있을 터이니, 편지도 하지 말라고…, 그 동안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쪽으로 가도 좋다고, 그렇지 않고 혹시 나를 기다리게 된다면, 집 앞에 있는 오크나무에 노랑 댕기 한 오라기 달아달라고…, 마지막 편지의 내용까지 다 털어놓게 되었다.

그 내용을 전해 듣자, 여학생들도 모두 그 아저씨처럼 마음이 조려왔다. 이윽고 버스가 어느 마을에 다가들었고, 그 아저씨는 차마 고개를 못 들고 있었는데, 여학생들의 환호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마을 입구 안쪽 오크나무에 수백 오라기 노랑 댕기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걸어가는 그 아저씨 등 뒤로 여대생들이 만세를 불러댔다. 그 소리가 바람을 일어 노랑 댕기들이 더욱 펄럭거렸다.

▲“저 노랑 댕기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제주교육사랑회’는 퇴임한 제주도 중등교원들의 모임이다. 며칠 전 이 모임에서 도내 나들이를 다녀왔다. 대정읍 상모리 1597, 섯알오름에 있는 ‘백조일손(百祖一孫) 묘역(墓域)’이었다. 그 묘역에는 수백 개의 대나무 기둥마다에 수없이 짙은 대나무 잎사귀처럼 노랑 댕기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제주 4·3사건이 진정될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내무부 치안국에서는 미군정에 의해 1945년 이미 폐지된 예비검속법을 악용하여, 각 경찰국에 소위 불순분자 등을 구속하고 처리하도록 지시하였다.

모슬포 경찰서 관내에서는 344명을 예비검속하고, 그 중 252명이 당시 계엄군에 의하여 집단학살 되고 암매장 되었다. 211위는 유가족들이 수습하였고, 41위는 행방을 알 수 없는 비극의 현장이 그곳이었다. 1950년 7월 16일 1차로 20명, 8월 20일 새벽 2차로 한림어업창고 및 무릉지서에 구금 되었던 60명, 새벽 5시에 모슬포절간고구마 창고에 구금되었던 130명을 집단학살 한 곳이다.

가축도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에는 그것을 아는지 눈물을 흘린다 한다.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예견했었는지, 신고 있는 검정고무신을 트럭 밖으로 몰래 벗어던져 길 표시를 했다 한다.

아직도 그 영혼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노랑 댕기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대입수능을 보았다. 수습 못한 다섯 영위(靈位)는 시구(屍柩) 없이 장례를 치렀다.

온 국민의 가슴 속마다에

향연(香煙)을 피워 올리듯

노랑 댕기들이 펄럭이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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