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생일’ 모두가 촛불을 들었다
‘가장 슬픈 생일’ 모두가 촛불을 들었다
  • 김동일 기자
  • 승인 2017.11.23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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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노동재해 입은 고 이민호군 기리는 추모문화제 열려
이군 생일 나흘 앞둔 19일 숨져…수많은 시민들 추모 열기
산업체 현장 실습을 하다 노동재해를 입은 고(故) 이민호군을 기리기 위한 추모문화제가 23일 오후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열린 가운데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이군을 추모하고 있다. <김동일 기자 flash@jejuilbo.net>

[제주일보=김동일 기자] 23일은 산업체 현장 실습을 하다 노동재해를 입은 고(故) 이민호군(18)의 18번째 생일이다. 이군은 생일을 딱 나흘 앞둔 지난 19일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눈앞으로 다가온 생일을 보내지 못한 채 숨을 거둔 이군을 기리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이군의 생일인 23일 저녁에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촛불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일대가 환히 밝아졌다.

며칠 전 제주시청 조형물 인근에 이군을 기리는 작은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오가면서 이군의 죽음을 안타까워했고 추모 글을 적어 내려갔다. 또 이군의 또래인 학생들은 마치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며칠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이군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고, 그런 그들이 이군의 생일에 한자리에 모여 촛불을 켰다.

민주노총 제주본부와 전교조 제주지부, 참교육제주학부모회 등 제주지역 24개 단체로 구성된 현장실습고등학생 사망에 따른 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제주현장실습대책위)는 이날 오후 6시 제주시청 조형물 앞에서 ‘가장 슬픈 생일(THE SADDEST BIRTHDAY)’이라는 주제로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오후 5시부터 이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는 피케팅과 추모리본 붙이기를 시작으로 개회선언과 묵념, 추모사, 추모공연, 규탄발언, 현장 자유발언, 추모의 글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김여선 참교육제주학부모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민호야 미안하다.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아팠겠니”라며 “너의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분노를 느끼는 이 상황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 우리 아들딸들이 존중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게”라고 말했다.

정영조 제주현장실습대책위 공동위원장은 규탄발언에서 “아이가 죽었는데 책임을 지겠다는 기관이나 어른이 없다. 세월호 때와 다른 게 하나도 없는데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며 “특히 제주도교육청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진상조사 결과를 내놓고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마련된 자유발언에서 고민성군(18)은 “오늘 수능을 치르고 왔는데 그 어떤 사람의 죽음도 물음표로 남아선 안 된다. 세월호 참사 때도 어른들의 세계라는 메커니즘 안에서 그 죽음에 대한 전말이 밝혀지지 않았다”며 “누군가가 죽었는데 진상규명이 되고 있지 않은 자체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적폐는 분명히 청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은 “전국에 있는 수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이군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여기에 오고 싶어 했다. 학생들은 내가 그렇게 될 수도 있다고 한목소리로 우려하고 있다”며 “다들 당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는 사고라고 느끼고 있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른들이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일 기자  flas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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