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집
외딴집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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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제주일보] 올레길을 걷다가 제지기오름 앞에 이르렀다. 푸른 바다 위로 조각배처럼 떠 있는 무인도와 보목동 포구가 어우러진 주변 풍경에 탄성을 자아내고 말았다. 해변을 끼고 깎아지른 절벽과 소나무 각종 수목이 울창한 멋을 내고 있다.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서 있는 자그마한 돌산이 눈에 들어온다. 삼각뿔 형상을 하고 있다. 어느 왕의 무덤처럼 낮으면서도 마을 포구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주니 수호신으로 보인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너 계단 낮은 곳에 지붕만 보이는 외딴집이 눈에 띈다. 그 집은 어느 예술가에 의해 四都三村(사도삼촌)의 원대한 꿈을 꾸는 집주인으로 근래에 바뀐 듯하다. 주말에만 내려오는 예술인일까. 바다를 향한 앞 울타리를 서너 단 정도를 내려 디귿자형을 만들고 골동품을 이용한 대문부터 남다르다. 지붕만 남기고 하얀색 칠을 한 인테리어가 나쁘지만은 않다.

오래된 기와가 마당 구석에 한 무더기 쌓였는가 하면 구석구석 장식한 손때 묻은 기와, 옹기종기 모아 놓은 보물 항아리, 넓은 무쇠 가마솥이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 형국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을 울타리 삼아 경계로 올려놓았다. 요즈음 보기 드물게 눈에 들어와 이쪽저쪽을 살펴보았다. 큰 파도가 밀려와 덮쳐도 바닷물이 빠져나갈 돌 트멍은 이승과 저승의 소통 공간인가.

일렁이는 물비늘은 밀려왔다가 조약돌에 부딪치자 자그락거리며 하얀 거품 내고 풀어 놓기를 반복한다. 바다에서 해녀가 테왁에 망사리 둘러메고 올라왔던 길이 울타리 틈새로 뚫려있다. 바다가 오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도만 캐내어 욕심을 버리라고 일러준다. 한 시간도 쉬지 않고 풀어놓는 자그락거리는 소리와 짐은 누구의 죄업일까.

내려놓은 울타리 너머는 태평양이다. 그 집주인은 태평양을 거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바라보려고 전면 통유리로 교체했나보다. 매일 사색의 창은 바다 속을 들고 나겠다. 울타리에서 바라본 통유리 너머의 거실에는 사람이 없다. 통유리의 거실 창은 정좌한 수중궁궐인 듯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고 있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큰 파도에 부딪쳐 사선형으로 금이 간 통유리가 애처롭구나.

대문짝을 가로로 내려놓아 받침대 위에 얹으니 책상이 되었다. 유난히 등받이가 높게 솟아오른 고풍스런 긴 의자에는 누가 앉을까. 문학가나 화가였을까. 집필을 하더라도 거침없이 술술 시간이 흐를 듯하다. 그러기 위해서 사도삼촌으로 왔을지도 모른다.

어느 화가의 빈 의자가 생각난다. 거리 두기의 힘과 어려움이 빈 의자에서 울고 있는 모양이다.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변하지 않은 일은 나쁜 상황에서도 무언가 좋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화가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배움과 깨달음이 있는 그림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 붓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화가는 계산 없는 몰입이 열정과 창조성의 또 다른 뿌리가 되었다.

바로 일상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뜨거운 삶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생생한 느낌의 빈 의자.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력을 가져다 준다.

외딴집의 빈 의자가 화가의 그림을 통해 불멸의 이미지를 갖게 된 경이와 감동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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