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아(·)'와 제주어의 미래
'아래아(·)'와 제주어의 미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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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종. 문학박사 / 서울제주도민회 신문 편집위원장

[제주일보] 지난달 15일 서울잠실종합운동장 보조 경기장에서는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살고 있는 제주인들의 잔치인 ‘서울제주도민의 날’ 행사가 있었다. 수천명의 제주인이 모인 이날 행사에서는 예년과 다른 모습이 있었다. 이날 개회식에서 고두심 김만덕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제주도의 노래’ 1절을 부른 후 이 노래를 다시 제주어로 바꿔 불러 행사에 참석한 제주인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고향을 떠난 중·장년 이상 제주인들에게 제주어는 향수를 불러오는 마법과도 같은 주문(呪文)이다.

제주어는 이처럼 고향을 떠난 제주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언어면서 언어학적으로나 국어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언어다. 그 중에서도 제주어에는 현대 한국어에 없는 ‘아래아(·)’ 음운을 온전하게 갖고 있다. 그래서 현대 한국어의 단모음 수보다 제주어는 ‘아래아’ 1개의 단모음을 더 갖고 있는 모음체계를 이루고 있다. 이중모음에서도 현대 한국어보다 ‘아래야(‥)’를 더 갖고 있다. 결국 제주어는 현대 한국어와는 다른 음운체계를 갖고 있어 ‘제 주어’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세종 임금이 현대의 서울에 나타나서 서울 사람과 소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언어학적으로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에서는 중세국어에서 다른 소리와 다른 뜻을 가졌던 ‘하다[多]’와 ‘ㅎ·다[爲]’를 실생활에서 다르게 발음하고 뜻을 구별할 줄 안다. 그러기 때문에 현대에 나타난 세종임금은 중세국어 어휘를 많이 간직하고 있고, ‘아래아’가 발음되는 제주에서 의사소통 가능성이 서울에서보다 훨씬 높다. 이처럼 ‘아래아’는 제주어를 제주어답게 하는 중요한 모음이기 때문에 ‘아래아’의 보전은 제주어 보전의 핵심 키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아’가 없는 제주어는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단모음체계가 서울말과 다르지 않아, 언어학적으로 서울말과 차별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래아’가 없는 제주어는 경상도나 전라도 방언처럼 그저 방언적인 사투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다행히도 제주어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은 제주의 곳곳에서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관련 기관에서 ‘제주어 연수’가 운영되고 있으며, 각종 행사에서도 제주어 관련 프로그램이 들어가고, 일반인들 중심으로 ‘사랑스런 제주어’ 등 온라인 상에서 제주어 모임 활동들도 활발하다. 탐라문화제 프로그램 중에도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비롯한 제주어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일반인과 학생들의 제주어 실력을 높이고, 제주어로 말하는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아래아’ 교육 강화의 일환으로 교사들의 연수와 함께, 이런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활용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어 말하기 대회’를 통한 하나의 방안은 ‘제주어 말하기 대회’에서 ‘아래아(·)’와 ‘아래야(‥)’ 발음의 심사 항목을 별도로 두어, 그 결과를 점수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와 ‘탈락’으로 활용하고, 이 항목을 ‘통과’한 참가자만을 대상으로 ‘제주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준다면 ‘아래아’ 발음 교육의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도 각종 제주어 말하기 대회에서 ‘발표력’ 항목 안에 ‘발음’ 기준을 두고 ‘제주어에 맞는 어조, 억양의 정확성’ 등을 심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으로는 ‘아래아’와 ‘아래야’ 발음 여부를 심사에 반영하기에는 부족하다. 현재의 심사 기준으로는 ‘아래아’와 ‘아래야’가 들어간 어휘를 발음하지 않고도 제주어 말하기 대회에서 얼마든지 우승할 수 있다. 그래서 제주어 말하기 대회에서 ‘아래아’ 발음 여부로 컷오프(cutoff)를 한다면 참가자들은 물론 지도 교사들의 ‘아래아’ 발음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노력들을 통하여 ‘하다[多]’와 ‘ㅎ·다[爲]’, ‘여름[夏]’과 ‘ㅇ‥름[實]’을 소리로 구별할 수 있는 제주인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어의 미래는 ‘아래아’ 발음의 소멸 여부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학적으로 ‘제주방언’이 아니라 ‘제주어’로서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아래아’가 실생활에서 사용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래아’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지금보다 더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치밀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주어 미래의 명운(命運)은 ‘아래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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