왝 더 독-개는 꼬리보다 똑똑한가
왝 더 독-개는 꼬리보다 똑똑한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2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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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제주특별자치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제주일보]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걸까?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왝 더 독’이란 20년전 영화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뱉은 대사 중 일부다.

영화는 정치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끝없는 공작과 연막을 펼치는 정치의 추악한 이면을 계속 보여준다.

정치가 결국 국민들의 알권리나 진실보다 정치 공작을 통해 좌우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사와 달리 영화는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 일색이다.

낯설기는 하지만 ‘왝 더 독(wag the dog)’이라는 말은 사회 곳곳에서 사용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말로 '주객전도'의 상황을 말한다. 주식시장에서는 선물시장(꼬리)이 현물시장(몸통)을 좌우할 때 이 말을 쓴다.

마케팅에서도 덤 마케팅, 꼬리 마케팅, 왝 더 독 전략, 인질 마케팅 등으로 사용된다. 물건을 파는데 끼어서 제공하는 덤이 더 큰 영향을 미쳐 소비자들이 사은품이나 덤을 받기 위해 관심이 없는 본 제품을 구매하는 현상을 말한다.

​어떤 영역에서 사용되듯 이 용어는 본말전도의 상황을 이야기하거나 이전에는 없었던 상황으로의 전환을 설명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국정원의 댓글부대 운영과 특수활동비 상납, 블랙리스트 등을 보면서 꼬리가 몸통을 얼마나 심하게 흔들었는지를 생각해본다. 꼬리가 개를 흔들다 못해 날뛰게 했으니 말이다.

작은 행동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디어 때문이든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사람들간 네트워크 때문이든 파급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경우가 많다.

뜻밖의 행위 하나가 몸통을 본질적으로 흔드는 것도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맑은 물위에 파란색 잉크를 떨어뜨린 직후 물감의 파란색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물은 흰색에서 파란색으로 곧 변하게 된다.

지난 주 수능 연기를 보며 ‘왝 더 독’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사후약방문이 당연시됐다.

사건사고는 늘 효율을 위해 기준을 무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대응은 언제나 동일했다.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멘트와 함께 사고 재발의 위험은 기존의 관행으로 지속하는게 당연한 사회적 합의였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관성이 존재한다. 공리주의의 논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입각해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최근의 수능연기의 결정을 보면서 물위에 물감을 떨어뜨려 물의 색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 되던 풍조. 기존 관행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무의식적인 동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기초로 소수의 희생이 당연하다는 공리주의적 판단 등등.

어떤 표현을 하더라도 생각과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중요한 전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능 연기라는 전대미문의 일로 당연히 설왕설래가 이뤄질 일이다. 수능 당사자들 역시 수능 연기로 얼마나 고통이겠는가.

모든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안전이라는 기준이 한번도 깨진적 없던 관행을, 성장과 개발논리의 보루인 대학입학시험을 연기했다는 사건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다.

변화의 단초가 내 앞에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수능 연기를 충격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기존 틀에 너무 얽매였던게 아닌지 되돌아본다.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지 않을지 모른다. 개가 화석이 되어버렸으면 꼬리를 심하게 흔들어 개를 깨워야 할 것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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