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 상황 일본인 입장서 쓴 정치소설
세계 정치 상황 일본인 입장서 쓴 정치소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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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초상과 가진노키구(佳人之奇遇)
‘가진노키구(佳人之奇遇)’ 전체 모습.

[제주일보]얼마 전 우리 책방을 찾은 손님 한 분은 아름다운 그림이 들어 있는 고서를 찾으셨다. 그 분은 책의 내용보다 겉면의 장정이나 인쇄된 글자체, 수록된 그림에 더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래서 멋진 동판화가 들어있는 19세기 서양 고서를 보여드렸더니 만족해 하셨다.

요즘도 책에 수록된 삽화(揷畫)가 아름다워서 독자들의 사랑을 더 받는 책들이 많이 있지만, 인쇄술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일일이 수공으로 만들었던 삽화의 아름다움은 과학적 기술의 진보로 만들어진 그것과는 남다른 바가 있다.

아름다운 삽화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 삽화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 해에 서울 출장길에 들렀던 고물상에서 상당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바로 매입한 책도 그런 경우이다. 내용은 불문하고 그 책에 수록된 석판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찬찬히 살펴보니 발문을 쓴 사람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한 권에 세 장씩 수록된 석판화들 가운데 나의 눈길을 제일 먼저 받은 판화의 주인공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었다. 대원군이 생존해 있을 당시인 1891년(명치 24)에 출판된 책에 수록된 삽화이다. 이 판화와 거의 같은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을 원본으로 판화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판화는 조선과 청나라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갓을 쓴 조선 군인과 변발을 한 청나라 군인이 한편이 되어 숲속에서 일장기를 든 일본군과 전투를 하는 장면이다.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건 모두 조선과 청나라 군인들인 것만 보아도 일본에서 제작된 판화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1885년에 발간된 초편의 발문은 조선 말기의 풍운아 김옥균(金玉均)이 썼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해 있던 그가 은신해 있던 여관을 찾아온 저자의 요청을 받고 써 준 것이다.

‘가진노키구(佳人之奇遇)’ 5편 중 조청연합군과 일본군 전투 장면(석판화)

이런 석판화와 발문이 수록된 책이 바로 '가진노키구(佳人之奇遇)'로 메이지(明治)초기 정치소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초편(初編)은 1885년(명치 18)에 처음 출판되었고, 1897년 8편까지 간행되어 완결되었다.

저자는 시바 시로(柴四郞 1852~1922)로 필명이 도카이 산시(東海散士)이다. 저자는 1879년 도미(渡美)해서 하버드대학 등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귀국 후 당시 세계 현대 정치사를 다룬 이 책을 출판해서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망국민이나 망명자들이 말하는 자기나라의 역사에 대한 비판이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다. 전반부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의존한 상태로는 민족 해방이 안 된다는 것과 작은 나라의 국민은 나라를 지키려는 기백을 가져야 한다는 것, 작은 나라끼리 손을 잡고 협력해야만 한다는 내용이고, 후반부에는 작가 스스로 유럽을 시찰했던 경험과 김옥균과의 교류를 통한 조선 문제와 청일전쟁 후의 삼국간섭을 둘러싼 논의가 작품의 주축을 이룬다.

당시의 세계 정치 상황을 일본인의 입장에서 정치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서의 한계는 있지만, 조선 말기 우리가 직면했던 상황과 비교해서 검토해 볼 가치는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하시길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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