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도민적 4.3 추모" 지방공휴일 지정 목소리
"범도민적 4.3 추모" 지방공휴일 지정 목소리
  • 김현종 기자
  • 승인 2017.11.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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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내년 4.3 70주년, 日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을 가다] 학생 등 참여 분위기 확산 기대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양윤경) 회원들이 지난 8일 일본 오키나와현 평화기념공원 내 평화의 비를 방문해 한국인 희생자들의 각명비 구간을 둘러보고 있다.<일본 오키나와=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제주일보=김현종 기자] 일본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오키나와전투(1945년 3~6월)가 벌어졌던 곳이다. 오키나와전은 일본 영토에서 일어난 미군과 일본군간 유일한 지상전으로 미군 1만2000여 명, 일본군 10만여 명이 전사했다.

당시 주민도 무려 10만명이 죽었다. 이유는 “오키나와는 100% 희생돼도 괜찮다”는 일본군 수뇌부의 전략 때문이었다. 오키나와 수비군인 제32군의 사명은 주민 생명이 아닌 일본 본토, 나아가 천황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결국 오키나와 주민은 일본 본토 방위를 위해 ‘버리는 돌’에 불과했다. 버리는 돌은 강에 다리를 쌓을 때 물 속에 깔리는, 희생이 가장 큰 것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지금도 오키나와 상당수 가정의 기일(忌日)은 4~6월에 집중돼있다.

일본은 오키나와전이 끝난 후 두 달도 안 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에 강제 병합된 이민족 국가’로 규정해 미군정 하에 편입했다.

내년 4‧3 70주년을 앞두고 최근 찾은 오키나와는 제주와 닮은꼴이었다. 지리적으로 변방에 있는 섬인 데다 공권력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점만 해도 그랬다.

오키나와 남쪽 이토만시 마부니 언덕 약 200만㎡(60여 만 평) 규모의 대지에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오키나와전을 기념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평화를 기념하는 곳이다.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이른바 ‘오키나와전(戰) 종언의 땅’.

오키나와전 당시 32군 최고사령관 우시지마 미츠루의 자결과 함께 수많은 일본군이 ‘살아서 적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는 전진훈(戰陣訓)에 따라 민간인과 함께 희생을 강요당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평화기념공원은 1972년 5월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에 맞춰 일본정부가 조성해 1975년 6월 개관했다. 평화기념당, 평화기념자료관, 평화의 비, 국립전몰자묘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일명 ‘평화의 주춧돌’인 평화의 비는 희생자 각명비로 전쟁 당시 이곳을 포위한 미군 함정 1500여 척에서 날아든 함포사격, 즉 ‘철(鐵)의 폭풍’을 형상화했다. 2003년 6월 현재 23만8429명이 각명돼 있다. 한국인 326명을 포함해 외국인은 1만4526명이다.

특히 평화의 비는 적과 아군, 전투원, 비전투원, 가해자, 피해자 구별 없이 국적을 불문하고 이름을 새겼다. 전투원의 경우 부대와 계급명을 적지 않아 일개인으로 환원‧기록함으로써 전쟁 미화를 차단했다.

평화의 비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과거에 대한 ‘관용의 마음’을 넘어 모든 전쟁을 부정하는 ‘오키나와의 마음’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평화기념공원 내한국인위령탑.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강제 동원돼 희생된 조선학도병 1만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5년 8월 세워진 탑이다. <일본 오키나와=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6월 23일은 지방공휴일…학생들 추모 물결

6월 23일은 1945년 우시지마 미츠루 사령관의 할복으로 오키나와전이 사실상 끝난 날이다. 오키나와현은 6월 23일을 ‘위령의 날’로 지정해 매년 평화기념공원에서 전몰자 추도식을 열고 있다. 총리도 추도식에 반드시 참석한다.

특히 오키나와현은 6월 2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해 추모의 뜻을 확산하고 있다. 그 결과 추도식은 일본 수학여행단의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해 지난해만 해도 중고교생 20만명 이상 방문했다.

당초 오키나와현은 법적 근거 없이 조례를 통해 지방공휴일을 시행하던 중 일본정부가 폐지를 시도하자 주민 반대운동을 벌인 끝에 1991년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공식 공휴일로 인정받았다.

아라가키 야스코 전 오키나와국제대학교 교수(71‧여)는 “학살 추모일은 평화에 대한 미래세대 교육을 위해 지방공휴일로 지정할 필요성이 크다”며 “정부의 공휴일 폐지 시도 당시 시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여 정식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아라가키 전 교수는 제주‧오키나와결연회 주재관, 신(新)오키나와현사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고, 제주4‧3추념식에도 지속적으로 참석했다.

그녀는 “4‧3추념식에 참석할 당시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며 “유족과 관계자만 있고 도민 참여 없이는 평화정신의 계승은 없다”고 지적했다.

우미세도 유타카 오키나와9조헌법 공동대표(74)는 “학살에 대한 추모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며 “평화로 승화하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 4‧3추모식에 학생들이 부모 손을 잡고 참석할 수 있도록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키나와9조헌법은 평화헌법 개정 반대운동 단체로, 우미세도 공동대표는 일본 내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한라산회 전국회장으로 활동하며 4‧3추념식에도 참석해 왔다.

그는 오나가 타케시 오키나와현 지사의 후원회장도 맡고 있다.

▲4‧3희생추념일 지방공휴일 지정 목소리 높아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4·3단체를 중심으로 제주사회에서도 4·3 추모 확산과 후세 교육을 위해 4·3희생자추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2014년 3월 4·3희생자추념일이 공식 기념일로 지정된 후 지방공휴일 지정 필요성이 한층 거세진 데다 내년 4·3 70주년을 앞두고 공론화 목소리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제주도와 도의회가 1년 전부터 조례 제정을 통해 4·3희생자추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법령 위임 없이 위법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5‧18민주화운동과 노근리학살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부마항쟁, 대구2‧28의거 등 과거사 관련 사건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방공휴일로 지정돼도 공공기관만 쉬고 민간기업은 근무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4·3 70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기 위해 각계 역량을 모으고 있다”며 “범도민적이고 범국민적인 공감대 속에 진정한 추모 분위기를 폭넓게 형성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양 회장은 “제주와 오키나와는 변방인 데다 잔인한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점 등 공통점이 많다”며 “오키나와현이 6월 23일 지방공휴일 지정으로 추모 분위기를 확산하고 지역 공감대를 확대한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 한켠에는 한국인위령탑이 서 있다.

이 탑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강제 동원돼 희생된 조선학도병 1만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민단 주도로 1975년 8월 세워졌다. 전국 각지에서 공수해온 돌을 쌓아 분묘형태로 만들어졌고 전면에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새긴 비석도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 동포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금해 위령탑을 세운 땅 2115.7㎡(640평)를 사들여 1978년 한국정부에 기부했다. 현재 일본 등기부등본 상 이곳은 한국 정부 소유로, 민단이 관리하고 있다.

 

 

김현종 기자  taza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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