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사람들
'자신'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사람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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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남편 생일선물을 챙기는 걸 깜빡 잊은 아내가 사과했다. “여보, 미안해요.”

남편이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내가 바라는 건 선물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공경해주는 거야.”

곰곰이 생각하던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에게 선물을 사주는 걸로 하겠어요.”

남자건 여자건 상대방을 늘 사랑과 공경으로 대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성장배경과 성격이 다른 남·녀가 만나 함께 하다 보면 크고 작은 감정의 골이 패일 수밖에 없으니까.

차라리 ‘사랑스런 그대’를 꿈꾸다 실망하기보다 정도껏 티격태격하는 게 현실적이란 얘기도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면 ‘웬수 같은 정’도 쌓일 것이고. 그래서 백번 ‘사랑, 사랑’ 하는 립 서비스 같은 말을 하기보다 선물이 훨씬 실제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니 생각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요즘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올 연말에 자신에게 선물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10명 중 7명이 “물론 그렇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물론 2030세대 젊은이들 이야기다.

나 같은 구(舊)세대로선 자신에게 선물한다는 아이디어가 꽤나 신선하게 다가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왠지 마음이 불편함을 숨길 수 없다. 아마도 선물 속에 필히 담겨야 하는 건 누군가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나 애틋함, 정성스런 배려여야 한다는 고정관념 탓에 그럴 것이다.

이 뜬금없는 고정관념은 어디서 왔을까 생각을 더듬다 보니 학생 때 추억도 떠오른다. 이맘때 즈음이었을까.

털장갑 선물을 받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선물이란 당연히 ‘나’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려니 생각하고 그렇게 믿었다.

▲미국의 한 지방 신문에 이런 광고가 실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오래된 중고 털목도리를 찾습니다.(어떻게 어디서 잃어버렸는데…중략) 나에겐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중고 털목도리 값의 수백배에 달하는 광고료를 지불한 이 광고 내용이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털목도리가 자기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자신의 선물을 준비한다는 신세대의 상큼한 생각에 딴지를 걸고픈 마음이 생기는 걸까.

공공장소에서 주위 시선은 아랑곳없이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대중교통이든 엘리베이터든 타고 내릴 때 연장자에 대한 배려없이 오직 ‘나’만을 찾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 세태다.

그렇게 늘 ‘혼밥’, ‘혼술’ 하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노라니 선물도 자신에게 주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니겠는지.

▲하기야 우리나라 신세대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사회 트렌드 자체가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거나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시대는 가 버렸으니.

살아 숨 쉬는 개인의 실제 삶 자체에 관심을 갖고 실용과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은 동서양의 차이가 없는 듯하다.

혹자는 이를 일컬어 자아(self)의 확대라 표현하기도 하고, 큰 구조(big structure)로부터 작은 이야기들(small narratives)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는 중이라 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 지극히 충실한 세대를 향해 “선물이란 타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란다”식의 ‘꼰대’ 같은 충고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인 세대’엔 어쩌면 자신을 위한 선물이 일종의 ‘힐링’ 경험이 될 수도 있겠다.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작 선물을 필요로 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려운 듯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물질 가는 곳에 마음 간다’는 소비 자본주의의 폐해가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에 너무 솔직히 드러나고 있어 걱정이 고개를 든다.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여서 그렇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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