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가 제주별에 왔다
어린 왕자가 제주별에 왔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08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 / 논설위원

[제주일보] 가을이 짙어진다. 아니 겨울이 다가온다. 따뜻함이 기다려진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은 평소 돌 줍는 걸 좋아했다.

무심하게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주웠다. 옆에서 말을 걸었다. “돌을 왜 주우세요?” 강가였다.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더니 “받침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지. 돈과 돌을 생각해 봐.” 다시 흐르는 강물을 쳐다본다. 손 동작은 주섬주섬, 아무 쓸모도 없는 듯 보였지만 그는 소중하게 돌을 챙긴다.

시선이라는 게, 마음이라는 게 중요한가 보다.

#장면1. 어린왕자가 지구라는 별에 나타났다. 길을 가다가 주정뱅이를 만났다.

“왜 술을 마시나요?”

“잊어버리기 위해서다.”

“무엇을 잊으려는 건가요?”

“부끄러움을 잊으려는 거다.”

“무엇이 부끄러운 건가요?”

“술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운 거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구나. 어린 왕자는 당황하며 떠났다. 중얼거리면서. 조금 좋아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냐. 우리는 흔히 그래, 조금 좋아해 놓고 사랑한다고 말해버리지. 사랑한다는 말은 진실을 위해 아껴야 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뭐지? 돈 버는 일? 밥먹는 일? 아니야. 마음을 얻는 일이야.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희망을 그리고 싶었고, 자신이 동경하고 희망하는 삶을 형상화했다.

소행성에서 지구까지 여행하면서 ‘어린 왕자’가 만나는 사람들, 즉 권력을 가진 왕, 허영심으로 가득한 남자, 술꾼, 장사꾼, 가로등 켜는 사람, 지리학자는 세상의 모순을 보여준다.

그들이 가진 권력, 허망, 자기 학대, 물질 등은 세대를 불문하고 마치 삶의 진리인 듯 포장되어 있다. 여행의 종착점인 지구에는 특히 많은 모순이 존재한다.

생텍쥐페리는 이런 지구에 꿈과 희망을 전하고자 어린 왕자를 보냈다.

그래 ‘어린 왕자’는 ‘독서하는 사람들의 통과의례인 명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전하는 걸작이다.

#장면2. 어린 왕자가 어느 날 제주라는 별에 왔다. 낯설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하다. 길 거리에서 한 술꾼을 만났다.

“왜 술을 드시나요?”

“잊어버리기 위해서다.”

“무엇을 잊어버리기 위해서인가요?”

“부끄러움을….”

“무엇이 부끄러운가요?”

“…….”

어른들은 참 이상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났다. 뭐라고 중얼거린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없어. 그저 알고 싶을 뿐이야. 욕심? 제주도에 대해 우리가 뭘 알지?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게 뭐지? 행복인가? 모르겠다. 별나라가 좋다 나는. 별나라는 하늘의 별이 있어서 꿈을 꿀 게 많아. 제주별의 꿈은 뭐지?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행복이 맞을 것 같은데. 행복한 별, 그래 그게 제일 좋아. 경치도 좋겠다. 인심도 좋겠다. 우주에서 봤을 때 제주별은 아주 빛나.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워. 다음에도 와볼까. 다가오는 겨울에 따뜻한 별, 빛나는 별이 되봄직 해도 괜찮겠다.

제주에는 신화가 많다. 그 신화와 어린 왕자와 같은 꿈과 희망이 있는 스토리텔링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그리스 로마 신화가 기록 신화로 세계 최고라면 아마 제주 신화는 세계 최고의 구비전승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제주 신화는 비단 제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속으로 뻗어나갈 충분한 가치를 담고 있다.

제주도 지하에서 수천, 수만년 동안 씨줄날줄 얽히면서 온갖 신비로운 이야기를 뱉어내는 동굴 이야기도 다름 아니다.

‘천지 혼합’과 ‘천지개벽’의 과정을 거쳐 ‘잉태’와 ‘탄생’이라는 거룩함 속에 세상 질서와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어린 왕자가 오면 이런 것들을 보여 주자. 우주로 퍼져 나가게. 손해 볼 일이 없으니까.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