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부남철기자] 제주는 일년 내내 축제가 이어지면서 관광객들과 도민들을 유혹한다. 일일이 셀 수는 없지만 제주지역에도 고정적으로 80여 개 이상의 축제가 개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축제의 제목이 다르고 주요 내용이 다르지만 이상하게도 축제에 다녀오면 특별히 무엇을 보고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제주의 축제 대부분이 자연경관을 주제로 하다보니 행사 방식이나 내용도 대동소이한 상황이다. 이는 축제 관계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축제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축제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방문객들을 유입하기 위해 고민하겠지만 솔직히 두드러진 변화는 잘 안 보인다.
지난 주말에도 도내 곳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열렸다. 그 가운데 제주시와 제주독서문화대전 추진위원회(위원장 장영주)가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마련한 ‘제주독서문화대전’은 기존 축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제주독서문화대전은 ‘책으로 가득한 섬’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공공도서관, 동네책방, 서점, 독서동아리, 지역출판사 등이 참여해 ‘문화의 섬 제주’를 만들겠다는 취지아래 추진됐다.
기자는 솔직히 제주독서문화대전을 개최한다는 보도자료가 나왔을 때 다른 축제와 같이 먹고 즐기는 ‘행사’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 행사에 도민들이 관심을 가질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무리 독서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책과는 멀어진 지금의 현실도 이런 의문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기자의 이런 ‘회의감’은 무참히 깨졌다. 기분 좋은 패배였다.
제주독서문화대전 개막식이 열린 지난 4일 개막식을 2시간 앞둔 탑동해변공연장을 찾은 기자는 깜짝 놀랐다. 바람이 불고 무척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그 때부터 공연장 관람석 절반 이상이 관람객들로 차 있었다. 주변에 마련된 각 부스에도 책을 보고 구매하는 도민들로 가득차 있었다. 관람객들도 노인들부터 어린아이들까지 다양했다. 이틀간 열린 제주독서문화대전을 찾은 관람객은 2만여 명이었다. 주최 측이 추산한 인원이지만 현장을 본 기자로서는 신뢰가 가는 숫자였다. 특히 이 축제의 장에 ‘술’이 없어서 가장 좋았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문화학자인 요한 하위징아(Huizinga, Johan)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제의와 축제는 근본적으로 매우 유사하다고 했지만 종교적 권위가 쇠퇴해지면서 축제는 이벤트화가 되고 있다.
하지만 축제는 오랜 역사적 기원과 지역만의 특수성이 반영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주민들의 정체성과 연관된다고 생각된다. 축제는 지역 주민들의 주인 의식과 자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축제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인 지역 주민들의 주인 의식과 그 주인 의식을 담아내는 기획자의 역할이다. 이번 제주독서문화대전도 제주어, 설화, 제주 4·3, 제주를 품은 책 등을 소개한 ‘제주책관’과 도내 곳곳에 산재한 동네 책방을 소개한 ‘제주에서 동네책방을 만나다’, ‘책 그리고 돌담카페’ 등의 도민들에게 ‘문화의 섬 제주’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아이디어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제주의 축제는 일반적으로 관광객들을 유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 축제 때문에 관광객이 온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을 왔다가 축제가 열리고 있으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제주독서문화대전은 관광객을 향한 축제가 아닌 도민들을 위한 축제였고 축제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