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김시종
디아스포라 김시종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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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제주일보]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으로 ‘씨를 뿌린다’의 의미다.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주민들이 고향을 자발적으로 혹은 강제로 떠나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을 뜻한다.

다아스포라 ‘경계인(境界人, marginal man)’으로 살면서 제주를 품고 머리와 손은 일본어를 사용한 시인 김시종(金時鐘).

‘2017 전국문학인 제주포럼’에 참석하여 ‘시는 현실인식의 혁명’이란 기조강연을 하였다.

대표시집 역시 ‘경계의 시’. 일본공산당에서도 이탈하면서 결국 ‘귀국선’을 타지 못한 채 남한과 북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

“재일조선인 중의 한 사람인 저는 일본의 현대시(現代詩)와 어떤 관련을 맺어왔던 것일까요? 저는 일본에 온 이래로 일본 시(詩)의, 아니 일본시단(詩壇)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일본 시의 권외(圈外)에서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태어나 4·3사건에 휘말려 1949년 일본으로 탈출하기 전까지 소년 시절 대부분을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에서 보냈다.

그야말로 황민화 교육이 길러낸 제국의 소년이었다.

한글은 한 글자도 쓸 줄 모르고 ‘식민지 지배’ 같은 말은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외골수 ‘황국소년’이었다.

1945년, 열일곱의 그는 자기 나라라는 의식조차 없었던 조선으로 ‘떠밀려오듯’ 해방을 맞이했다.

남로당 제주읍당 세포로 활동하면서 4·3을 3개월 정도 체험했다. 6개월이면 조천까지는 해방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동쪽 근처의 빈 가게가 된 옛 공설시장 안으로 달려 들어가 좌측의 깨진 창틀을 통해 이웃인 지사 관사의 뒷담을 뛰어넘었습니다. 폭이 20㎝ 정도 되는 돌담 위를 따라 가지가 얽힌 벚나무 가로수 수풀로 빠져나가 지사 관사의 뒷마당과 등을 맞대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바로 아랫집의 좁은 뒷마당에 뛰어내렸습니다. 바깥쪽 길은 바로 왼쪽이 북국민학교 정문입니다.”

그는 ‘우체국 거사’ 실패 이후 도립병원에 잠입했다가 미군 임시 하우스보이를 거쳐 도일(渡日) 직전까지 외숙부의 집에 몸을 숨겼다.

일본으로 탈출하던 당시 그는 ‘북조선’으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김일성 우상화와 조총련의 북한 편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57년 조총련으로부터 조직적 비난을 받았다.

긴 세월 가슴에만 묻어둔 채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 기억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조선과 일본에 살다’.

그 책은 아사히 신문사가 제정한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바로 제주4·3에 대한 기록이다. 오사라기 지로상은 소설가 김석범(金石範)도 수상한 바가 있다.

그의 시집 ‘잃어버린 계절’이 일본의 대표적 시 문학상인 ‘다카미 준(高見順)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국과 일본/나 사이에 얽힌/거리는 뚝 같다면 좋겠지//사모와 겸딤/사랑이 뚝 같다면/견뎌야만 하는 나라 또한/똑같은 거리의 잇겠지”.

모국어와는 다른 언어의 이중 삼중 무게를 견디며 꼿꼿이 시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이번 기조강연에서 “제가 일본에서 살아온 ‘재일(在日)’의 삶은 유려하며 정교한 일본어에 등을 돌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감정이 과다한 일본어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저를 키운 일본어를 향한 보복이었습니다. 저는 빡빡한 일본어로 70년 가까이 시를 쓰며 살아왔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장편시집 『니이가타(新潟)』는 반일본적 서정성과 리듬을 강조한 독특한 글로 응축된 표현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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