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힘, 삶의 품격
언어의 힘, 삶의 품격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1.0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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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 / 문화기획가

[제주일보] 곧 공연될 ‘세종대왕’ 오페라 대본 정리를 마무리하다가 문득 ‘언어’라는 화두가 떠올라 며칠째 궁리중이다. 마치 고양이가 방울을 가지고 놀듯이 내가 가지고 놀 거리가 생겼으니 한동안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시절 언어학을 강의하시던 교수님이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는 언령관(言靈觀)을 소개해 준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니 매우 그럴 듯한 것 같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고 경험하는 세계 속에 있다. 이것은 우리 몸이 경험하는 현실적인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 그러면서도 두 세계는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이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셈이다. 정신세계와 관련짓는다면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세계는 이성(理性)의 영역이고 몸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감성(感性)의 영역이다.

감성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본성이다.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고 보루이다. 기쁨과 슬픔, 혹은 분노와 같은 감성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이러한 감성을 통해 두려운 적을 본능적으로 피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를 만들 수 있으며,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신체 언어(body language)’라는 것이 이성보다 감성을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에 이성은 논리적인 추론과 판단 그리고 결정을 하도록 도와준다. 이것은 사회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어의 힘을 통해 길러지고 강화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언어가 이성의 영역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신체 언어’로 드러낼 수 없는 감성적 표현 역시 언어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음성의 강약이나 단어의 선택 등을 통해 사람의 기분을 드러내는 데 언어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언어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성적인 측면과 감성적인 측면을 모두 아우르면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품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정제되고 아름다운 어휘와 부드럽고 편안한 음성으로 대화를 하는 사람과 거칠고 격정적이면서 불편하고 괴로운 음성으로 대화를 하는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언어를 듣는 수용자의 반응과 영향을 고려하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중에도 격에 맞지 않고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라는 사람도 그렇다. 지위나 신분이 높다고 사회지도층은 아니다. 그러한 품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고등교육을 못 받은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품격있고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통해서 말이다. 예전에는 귀여운 어린 아이를 빗대어서 ‘강아지’, ‘똥강아지’ 등으로 부르곤 했는데, 요즘에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일컬어 ‘아이’라고 하거나 주인을 ‘아빠’, ‘엄마’ 등으로 부르면서 ‘인격’을 부여하는 게 대세다. 물론 그 깊은 속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과 동물에 대한 가치관의 전도 현상이 언어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사람은 어떤 ‘단어’로 명명되는 순간 그 ‘단어’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려는 무의식적 억압을 받게 된다.

가령 ‘개××’라는 욕을 듣게 되면 자기를 ‘개’와 동일시하고 그렇게 행동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 어떤 아이가 ‘내가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다. 자기가 개하고 형제지간이라고 하면서 개 흉내를 내서 배꼽잡고 웃었다.

인간을 비하해 동물과 동일시하며 욕을 하고 실제 동물에게는 인격을 부여해 실제 사람처럼 명명(命名)하고 존중한다. 그러다보니 무의식적으로 동물을 사람처럼 대하게 되고 사람을 동물처럼 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반려동물에 밀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받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도 이러한 언어 활동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품격을 나타내고 존재가치를 결정하는 지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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