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다시 세우는 '더럭초등학교'
주민들이 다시 세우는 '더럭초등학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2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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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학교는 마을공동체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학교가 사라진 후 마을이 정신적 구심점을 잃고 황폐화된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점에서 애월읍 상·하가리 주민들의 학교 살리기 운동은 애향(愛鄕)을 넘어 마을의 정체성(正體性)을 지키려는 투쟁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24일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 발전위원회(공동위원장 장봉길·강종우)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과 제주시교육지원청 등에 더럭분교장의 본교(本校) 승격 요청서를 제출했다. 조국 광복을 맞은 이듬해 마을 주민들은 땅을 내놓고 힘을 모아 하가공립국민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가 4·3사건으로 불타버린 후 1954년 더럭국민학교로 재건됐는데 1996년에 학생 수 감소로 애월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그리고 2009년에는 재학생 수가 17명까지 감소하자 애월초등학교로 통폐합돼 아예 학교 자체가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상·하가리 주민들과 이 학교 동문들이 학교 살리기 운동에 나선 것은 이때부터다. 주민들은 2012년과 2014년 2차에 걸쳐 20세대의 이주민을 위한 공동주택을 건립하고 이주민들을 받아들였다. 학교 급식소를 현대화하는 등 학생 수 확대를 위해 주민 모두가 단결했다. 마침내 올해 학생 수가 99명에 이르렀다. 본교 승격 요건이 충족된 것이다. 주민들이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만든 이 학교를 다시 세운 것이다.

우리는 이 마을 주민과 이 학교 동문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제주지역 농어촌 소규모 학교는 제주도의 특수한 성격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학교가 조국 광복과 함께 주민들이 무상으로 내놓은 땅에 주민들의 땀으로 세워졌다. 따라서 이들 학교는 단순한 ‘배움터’를 넘어 지역사회의 정신적·심리적·문화적·역사적 ‘연대(連帶)의 공감터’다. 학생들에게는 배움터이자 주민들에게는 집회의 장이고 동문들에겐 추억의 장이다.

학교는 끈끈한 만남과 교감, 소통의 장이다. 마을은 학교를 통해 숨을 쉬고 활력과 기운을 얻는 것이다. 그런 학교가 사라진다면 주민과 마을이 어떻게 되겠는가.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를 올바르게 교육시키려면 마을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소규모 학교 살리기’ 정책 전환도 마찬가지다.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하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능사가 아니다. 또 정부 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귀농·귀촌 장려정책에도 역행된다.

정부는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마을 소규모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꿈과 끼를 기를 수 있도록 학생 수를 기준으로 하는 인위적 통폐합보다 ‘작은 학교 살리기’로 정책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도농(都農) 상생과 지역균형발전을 구현하는 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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