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선문 하천 트레킹
방선문 하천 트레킹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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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제주일보] 도심에서의 가을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제주의 새로운 관광의 명물로 부각되고 있는 올레길의 대명사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곳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에게 도심에서의 오라올레길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흥밋거리였다.

간편한 산책복장 하고 연북로를 달려 출발점인 보건소 뒤편 고지교로 향했다. 조그만 푯말에 ‘숲 따라 걷는 오라올레’ 라고 예쁘게 씌어 있었고, 열한 개의 숲길 코스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고지교의 옆 조그만 길로 들어섰다. 통나무로 안전대를 연결하고 돌담으로 계단을 만들어 탐방객들이 안전하고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 좋았다. 돌계단을 올라서자 조그만 숲길이 나타났다. 발길에 차이는 솔방울 촉감이 도심에서 찌든 메마른 감성에 여유로움을 준다.

첫 번째 코스 촉감석 푯말이 나타났다. 소나무와 팽나무 숲 사이로 바닥이 드러난 하천 한 쪽에 커다란 암석이 보인다. 고지교 다리 위로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시끄러운 소음을 들으며 메마른 건천의 한 구석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암석 상층부에 한 아름의 구멍이 하늘을 향한 채 목마른 갈증을 외치듯이 외로워 보였다. 푯말에 왜 촉감석이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기에 궁금증이 더 했다.

항소가 나타났다. 백회색의 암석들 깊은 곳에 물이 고여 있는 조그만 물웅덩이였다. ‘소’는 숲이 깊은 하천가의 물웅덩이를 말한다.

소싯적 아이들은 위험하여 귀신이 난다며 접근을 막았던 곳이다. 외가댁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칠흑 같이 어두운 논둑길을 걸어야 했다. 아버지를 따라 조심스레 지나는 고냉이소라고 하는 곳에서 보았던 불빛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하다. 아버지는 그 불빛을 도깨비불이라고 했다. 무서움에 아버지의 등 뒤로 숨었는데 그때의 아버지 등이 얼마나 듬직하고 안전한 피난처였는지 모른다.

숲길은 30~40년생의 소나무와 잡목들로 우거진 오솔길이다. 잡목들 사이로 아카시아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아카시아나무는 염기성에 강한 나무로 제주 해안가에서도 잘 자라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창꼼소로 가는 숲길에 코풀레기 자연학습장이 보인다.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자연체험의 장을 마련한 오라동주민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때죽나무와 사스레피나무가 있는 음지에 이끼고사리들이 자라고 햇볕이 들어오는 양지에는 가시엉겅퀴가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방선문으로 들어서는 길에 하천 트레킹이 이어진다. 철제 계단을 내려 하천에 들어서면 양쪽 주변에 있는 팽나무, 사스레피나무, 조팝나무, 때죽나무들이 하천을 향해 긴 가지들을 드리우고 있다. 하천의 빈 하늘에서 태양을 향하는 식물들의 특성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주의 하천은 다공질 현무암으로 유수천이 아니다. 큰비가 내려 하천을 흐르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면 지하천으로 흡수되어 표면에는 무수천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에 대하여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하천에 기암괴석으로 남아 있는 형태와 맨살 드러낸 하천 바닥의 매끄러움과 바닥 곳곳에 서 있는 둥근 암석들의 부드러움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천년 물살에 갈고 다듬어진 암석의 부드러움에 손을 대고 문질러 보아라.

그리고는 하천바닥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그만 조약돌을 두 손에 대고 댕글댕글 굴려 보자.

거기에 거침이 있는가. 그 속에는 미움과 시기, 질투와 같은 거친 감정이 없고, 사랑과 겸손, 희생의 순수한 노래가 있을 뿐이다. 도심에서 메말라 버린 원초적 감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방선문으로 가면 좋으리라. 선인들이 고향을 방문하는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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