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독립을 위해 내 몸 버리기를 가볍게 여겨”
“조국 독립을 위해 내 몸 버리기를 가볍게 여겨”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7.10.2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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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현봉철 기자] 지난 20일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시범 선생(1890~1948년)의 손자 김용욱씨(71)가 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을 찾아 조부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다.

김씨는 1983년 부산의 정부문서보관소를 뒤져 조부의 재판 기록을 찾아내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했다. 이후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했던 14명 가운데 11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조천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거사 당일 조천 미밋동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일제경찰에 붙잡힌 뒤 1년간 옥살이를 했던 김시범 선생은 ‘행적 불분명’을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시범 선생의 생애에 대한 자료는 수많은 증언과 향토사료 등에서 차고 넘친다. 이 때문에 ‘행적 불분명’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아닌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가보훈처조차 해방 이전 행적은 문제가 없지만 해방 이후 일부 행적에 문제가 있다며, 제주4·3사건과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학자들과 후손들은 해방 이후 사회주의 계열 활동을 했던 것과 제주4·3사건 당시 토벌대에 의해 끌려가 숨진 것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여운형 등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인정을 받았고,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해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이라고 공식 사과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유는 설 자리가 없다.

국가보훈처 등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시범 선생은 1920년 출옥 직후 14인의 동지 가운데 고문과 투옥생활 중 지병으로 출옥하자마자 숨진 백응선의 묘지에 묘비를 세웠다.

김시범 선생이 직접 쓴 비문에는 ‘조국 독립을 위하여 내 몸 버리기를 기러기 털과 같이 가볍게 여겼는데 일편단심 맹세한 것은 지난날과 같도다’고 새겨 있다.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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