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녹을 수 있다면
생각이 녹을 수 있다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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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 한의사

[제주일보]올해 추석은 연휴가 길어 친지 이웃들과도 교류할 시간이 많았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항상 좋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많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깊게 남아 있게 되면 아무리 생각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다른 생각이 또 떠오르고 잠도 오지 않게 됩니다. 이럴 때 이런 생각의 고리를 끊어버리거나 그 생각 자체를 녹일 수만 있다면 잠도 잘 오고 마음도 편안해질 텐데….

한의학은 심신의학이라고 하여 생각이나 감정의 변화와 관련된 이론이 있습니다. 기쁘고(喜), 노여워하고(怒), 근심하고(憂), 생각이 깊고(思), 슬퍼하고(悲), 두려워하고(恐) 놀라는(驚) 감정을 칠정(七情)이라고 합니다. 기쁠 때는 기가 느슨해지고, 노여워하면 기가 상승하고, 근심하면 기가 막히게 되고, 생각이 깊으면 기가 뭉치고, 슬퍼하면 기를 소모하고 두려울 때는 기가 아래고 내려가고, 놀랄 때는 기가 흐트러진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각이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 우리 몸의 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면 거꾸로 이 기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노여워하면 기가 거꾸로 상역한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운전하고 가다 다른 차 운전자와 실랑이가 붙어 한참을 싸웁니다. 이 때 화가 잔뜩 나면서 뒷목이 뻐근하게 아프거나 안구 충혈, 가슴이 두근두근, 입 안이 바짝 마르거나 불면 등의 증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기가 상역하여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이 상역하는 기운을 내려가게 할 수 있다면 위의 증세를 가라앉게 할 수 있습니다. 기가 상역하게 되는 경우는 대개 간(肝)의 기가 상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간의 경락을 잘 조절한다면 노여워하는 감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대돈·행간·곡천 혈은 간 경락의 화를 조절하면서 기를 가라앉힐 수 있는 대표적인 경혈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생각이 깊으면 기가 뭉친다고 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몸을 뒤척이면서 잠을 못 자게 되는 경우는 비장의 경락을 조절하면 기가 뭉친 것이 풀어지게 됩니다. 은백·대도·음릉천 등이 대표적인 경혈인데 잘 활용하면 위에서 얘기한 생각이 녹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게 합니다.

감정의 변화와 관련해서 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경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방광의 경락입니다. 방광의 경락은 물의 기운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경락입니다. 그러니 화를 끌 수 있는 대표적인 경락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방광의 경락은 뇌의 깊은 부분까지 지나가므로 불면·우울·이명 등 각종 정신 관련 질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락입니다. 통곡·위중·지음이 대표적인 경혈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어느 특정 부위의 기(氣)만 잘 조절하면 감정도 쉽게 조절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대개 감정의 변화와 관련한 기의 이상 작동은 단편적으로 오지 않고 가변적이고 복합적으로 오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각이 깊어 잠이 오지 않을 때 어떤 때는 비장의 기운을 풀어줘야 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간의 기운을 조절해줘야 될 때가 있으며 어떤 때는 간과 비장·심장 등의 기운을 같이 풀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데워줘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식혀줘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여워하거나 고민하게 되는 등의 감정의 변화가 생긴 이유를 적극적으로 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쉽게 감정이 동요되지 않도록 탐욕을 억제하고 수양하고 기도하며 가까운 주변 친지 이웃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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