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지나면 탁 트인 차밭…녹차꽃 향기 ‘그윽’
곶자왈 지나면 탁 트인 차밭…녹차꽃 향기 ‘그윽’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1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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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제14-1코스(저지~서광올레)-문도지오름~오설록(4.1㎞)

[제주일보]  # 사공이 많으면 배가…

문도지오름에서 내려오면 다시 곶자왈을 만난다. 이쪽은 나무들이 제법 크고 우거져 있어 겉만 봐서는 곶자왈 같지가 않다. 길이 꽤 넓고 편한데 요즘 들어 넓히고 포장하려는 듯 석분을 깔아놓기까지 했다. 일사천리로 걸어 다시 곶자왈로 들어서려는데, 웬 모형 배 전시장이 나타난다. 올레 7㎞ 지점인데, 티월드농장 ㈜장원주 ‘진박물관’이란 팻말을 세웠다. 테우를 비롯한 제법 큰 모형선 6척을 전시해 놓고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가 아는 ‘수해(樹海)’는 ‘울창하고 광대한 삼림 또는 그 광대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이건 그게 아니고 곶자왈 속 조그만 포구에 배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이다. 제주의 테우, 거북선과 조운선,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해적선 바이킹호, 일본의 전통 배까지 다양하다. 사유지인 듯 둥그렇고 적당한 넓이의 경계를 빙 둘렀는데, 한쪽에 커다란 이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나무 식탁 의자를 두 쌍 배치해 놓았다.

 

# 가을에 따먹는 열매

오늘은 인가가 없는 곶자왈 올레여서 간식을 마련하느라 터미널에서 물과 막걸리 한 병씩, 그리고 요기가 되게 햄버거 하나를 사놓은 터라 식탁에 앉아 음식을 펴놓고 먼저 막걸리 병을 땄다. 그 순간 ‘아뿔싸!’ 걸으며 많이 흔들렸는지 막걸리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반은 쏟아져버렸다. 옷에 묻은 술을 닦아내면서 ‘이건 혼자 다 마셔 취하지 않게 하려는 올레신의 배려’라 생각하고, 남은 걸 따라 감사히 마시고 자리를 떴는데, 아무래도 속이 허전하다.

어렸을 적 가을에 따먹었던 열매들이 없는지 살피며 걷는다. 아직 볼레(보리수)는 안 익었고, 쿳간잘귀(꾸지뽕나무 열매)는 이제야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여기는 밭이 없는 곳이라 간잘귀(개똥참외)나 푸께(꽈리)는 기대할 수 없고, 지대가 낮아 틀(산딸나무 열매)이나 도래(다래)도 없다. 어렸을 적 곶에 다녀온 아버지가 동그량(대나무로 만든 도시락)에 따다 준 틀을 떠올리니, 괜스레 눈가에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멀뤼(머루)는 제주에 네 종류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냥 멀뤼와 새멀뤼, 까마귀멀뤼, 개멀뤼다. 그 중 개멀뤼는 못 먹는 거고, 주변에는 촐밭에 나는 까마귀멀뤼가 제일 많다. 걷다가 졸겡이줄(으름덩굴)이 많이 있어 아래로 가만히 살피니, 막 벌어진 것 두 개가 달려 있다. 터지지 않게 따서 우선 사진을 찍고 속을 파내어 입에 넣었더니, 달콤하다. 요즘으로 치면 바나나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 곶자왈의 참나무들

이곳 저지곶자왈이나 이웃 화순곶자왈에는 참나무과의 가시나무가 유난히 많다. 이는 도토리가 달리는 나무들로 지금 한창 열매를 맺어 여물어가고 있다. 그 종류를 보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가시나무, 참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졸가시나무 등이다. 그 중 붉가시나무는 추운 지방에서는 자라지 않고 전라남도 함평군 기각리가 한계선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에서는 서귀포시 관내 오름에 많다.

‘가시’라는 말은 ‘참나무’의 일본어인데, 우리 나무에 아직도 붙어 있어 바꿔야 할 이름으로 꼽는다. 그 중 ‘개가시나무’는 다른 것에 비해 나은 건 없으나, 개체수가 얼마 안 남아 환경부지정 보호식물(2급)로 지정됐다.

2014년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의 정밀조사 결과 제주도에 688그루가 남아 있고, 그 중 680그루가 저지와 안덕지역 곶자왈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지역의 난개발로 인해 점점 개체수가 줄고 있어 걱정이다.

 

# 곶자왈을 걸으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옛날 사람들은 곶자왈에서 생활에 필요한 많은 재료를 얻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일의 하나가 농기구나 가재도구의 재료를 구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나무를 얻고 싶을 때는 ‘곶에 간다’고 해 곶자왈에 가서, 쟁기나 마차의 부품이 될 만한 큰 나무들로부터 ‘도리깨아들’ 하나까지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고, 해변 가까운 지역의 곶자왈은 지들커(땔감)의 생산지이기도 했다.

길을 걷는데 노랗고 예쁜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어 주워보니, 이나무 잎이다. 오름 강좌를 오래 하다 보니, 뒤늦게 온 어른들은 나무 이름 외우기나 들꽃 이름을 익히는 걸 매우 힘들어 한다. 그런데 서귀포 쪽에 오면 이름으로 우스갯거리 나무가 둘 있다. 그 중 하나가 이나무다.

얼핏 예덕나무와 혼동이 되는 이나무는 산남 쪽에 많이 자라는데, 이 곶자왈에는 여러 군데 몰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나무는 이름이 특이해 ‘이 나무가 무슨 나무에요?’라고 물었을 때, ‘예, 이나무지요’라 대답하면 놀리는 줄 알고 되물으면서 말장난이 돼버린다. 이곳에선 잘 찾지 못하지만 먼나무도 마찬가지다. ‘이게 뭔 나무요?’ 하면, ‘그게 먼나무요’하는 식이다.

 

# 서광다원과 오설록

저지 상수원 시설이 있는 곳에서 얼마 안 가 곶자왈을 벗어나면 탁 트인 차밭이 나타난다.

1985년 곶자왈을 개간하면서 녹차 묘목 100만 본을 심어 오늘날 국내 최대 규모의 차 생산지로 거듭난 서귀포시 서광리에 자리한 다원이다. 마침 차 생산이 끝난 뒤라 아래쪽에 하얀 녹차꽃이 피어 향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같은 차나무과의 동백꽃을 닮았다.

녹차밭이 시작되는 곳에서 올레길은 끝나지만, 나가는 곳에 오설록 티뮤지엄이 있어 그 주변은 관광객들로 북적되고 있었다. 한국 전통차 문화를 소개하고, 널리 보급하고자 2001년 9월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차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그동안 국내·외로 널리 알려져 연간 150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제주 최고 명소이자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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