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정치
시와 정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10.15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관후. 작가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영국 옥스포드대의 C.M. 바우라(Bowra) 교수는 그의 저서 ‘시와 정치(Poetry and Politics)’에서 심훈(沈熏)이 1930년 3월 1일에 쓴 시 ‘그 날이 오면’을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라고 일갈하였다.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하였으나, 그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고 평하였다.

심훈은 ‘그날이 오면’ 단 한편의 시로 불멸의 시인이 되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을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人定)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고, 시대를 반영한다. 문학은 시대의 산물이며, 삶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자기 삶, 자기 인생, 그리고 타자의 인생을 반영한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고 타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 한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찾는 과정이 문학이다.

우리 문학이 내면으로 도피하고, 시간으로 도피하고, 공간으로 도피하는 동안 독자들은 문학을 외면한다.

독자들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절실한 문제를 무시한다고 말한다.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문학의 정치성은 한국 현대사가 정치적 독재, 경제적 독점에 의해 주도된 데 그 원인이 있다.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 군사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면서 정치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다음은 민주화를 위해 몸으로 싸운 정희성의 시 ‘봄소식’이다.

‘이제 내 시에 쓰인/ 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 시대 상황을 연상치 마라/ 내 이미 세월을 잊은 지 오래/ 세상은 망해 가는데/ 나는 사랑을 시작했네/ 저 산에도 봄이 오려는지/ 아아, 수런대는 소리’

‘시와 정치’, 시는 정치를 품는 것일까, 정치가 시를 품는 것일까. 시는 정치뿐만 아니라 세상 꼭대기를 후려치는 회초리바람이다.

공자(孔子)도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 고 했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시를 공부하는 중요성을 ‘시 삼백 편을 외웠더라도 그에게 정치를 맡겼을 때 잘 해 내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에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면 시만 많이 외웠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강조하였다.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의 시 속에서 말하는 이는 소시민으로서 불의한 국가와 같은 ‘큰 권력’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일상에서 접하는 ‘작은 권력’이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과 자의식을 제시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모래야 나는 얼마나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나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우리 시대의 시인들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와 맞서고 있다.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초점을 맞춘 시인들이 있는가하면, 자본주의 문화의 헛된 욕망을 비판하는 시인들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근본적으로 자본과는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